세종대왕의 포용·소통처럼
세종대왕의 포용·소통처럼
  • 박숙희<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6.04.10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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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박숙희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직지」상권 열다섯 번째 이야기는 6조 혜능 대사(六祖 惠能 大師)의 또 다른 그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각성 스님의 ‘직지’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설간이 말하기를 “제자가 돌아감에 주상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이니 원컨대 화상께서는 자비로 心要를 가리켜 주소서.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는 밝고 어두운 것이 없음이라.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은 바로 대사(代謝)의 의미라. 밝고 밝은 것은 다함이 없으며 또한 다함이 있는 것이니라.” 설간이 말하기를 “밝은 것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두운 것은 번뇌에 비유한지라. 도를 닦는 사람들이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서 쳐부수지를 아니하면 없는 생사를 무엇에 의지하여 벗어날 수가 있겠나이까?”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지혜로서 번뇌를 비추어서 쳐부수려고 하는 것은 이 이승들의 작은 어린애인 양거, 녹거 따위의 근기라 상근대지는 모두 다 그와 같지 않느니라.”제자는 설간 자신이겠다.

이 책의 제목을 《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고 했지만 불조심요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6조 스님의 말씀은 《육조단경》에 나온단다. 代謝(대사)란 말은 서로 교대해서 왔다갔다 하는 것. 밤이 가면 낮이 오고, 낮이 오고 낮이 다 가게 되면 밤이 오는 것이겠다.

최상의 근기를 가진 큰 지혜의 사람들은 지혜를 가지고 번뇌를 조파(照破)하지 않는다는 것. 이는 번뇌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번뇌를 끊을 것도 없다는 것. 즉 지혜를 가지고 번뇌를 쳐부수는 것은 허망번뇌가 본래 공한 도리를 모르고 번뇌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쳐부수려고 하는 것이겠다. 그림자가 본래 없는데 없는 그림자를 제거하려고 해봤자 되지 않는다는 것 아니겠는가.

500년 전의 얘기,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이를 실용화하는 단계에서 집현전의 부제학인 최만리 등은 6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막는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집현전 학사가 한글을 반대하다니…”라고 세종은 대로 했다고 한다. 최만리를 즉각 하옥하고, 토론 또는 설득하는 임금의 친국에도 굽히지 않자 그를 풀어 주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최만리는 사직하고 낙향했단다. 조정의 대신들이 최만리의 무례함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진언하자 세종은 “노랫소리가 듣기 싫다 하여 새를 죽이려 함은 옳지 않다“며 그의 자리를 비워두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단다. 그러나 최만리는 끝내 향리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고사가 있다고 한다.

이는 6조 혜능 스님 말씀 상근대지 즉 마음은 본래 청정하고 망상번뇌는 본래 공한 곳으로 알아버린다는 것처럼 포용력을 발휘하고 소통을 늘리는 것은 세종대왕의 훌륭한 리더십 아닐는지. 작금의 우리에게 제20대 국민의 대표를 뽑아야 하는 총선이 당면해 있다. 세종처럼 자신이 맡은 임무와 역할에 온 마음을 다 쏟아 부어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 즉 포용·소통을 사명감으로서 국민을 사랑하는 그 위치에 오를 그런 국민의 대표를 선택함에 있어, 더 신중히 신명을 다하는 의무와 책임으로 권리를 행사해야 하지 않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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