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이라도 가려내자
최악이라도 가려내자
  • 임성재 <시민기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6.04.0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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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20대 총선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오가는 길목마다 유권자를 향한 후보들의 구애의 몸짓이 한창이다. 큰길가에 방석을 깔고 지나는 행인을 향해 큰절을 한다든지, 이상한 가발을 쓰고 어색한 춤을 추어댄다든지, 매연이 많은 사거리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끊임없이 인사를 해대는 등 평소에는, 아니 한 평생 해보지 않았을 법한 행동들을 거침없이 해댄다. 그러나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눈길은 무심하다. 투표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변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그런 광경을 볼 때 꼭 저렇게 선거운동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올바른 공약을 내세워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책대결의 선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급조된 선심성 공약이 대부분이거나 당선되고 보자는 식의 실현 불가능한 공약들로 넘쳐난다. 투표일까지만 유효한 유별난 선거운동이나 공허한 공약은 유권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그나마 방송과 신문, 시민단체들이 주관하는 각종 토론회는 후보자들의 정책을 점검하고 후보들의 됨됨이를 살펴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특히 이번 총선처럼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고, 공천과정에서의 잡음과 제3당이 출현하는 등의 어수선한 선거분위기에서는 이런 토론회들이 정당과 후보를 비교하고 검증하는 거의 유일한 도구가 된다. 후보들에게도 거리유세보다 효율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다. 그래서 지역기반이나 당세가 약한 소수정당의 후보나 무소속 후보들은 이런 토론회를 선거운동에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결국 토론회는 후보자의 도구이면서 유권자의 권리이다.

그런데 이런 토론회를 모두 거부하는 후보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하는 법적 토론회를 제외하고는 모든 토론회를 거부하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새롭게 지역구로 편입된 괴산군민과 함께하는 토론회마저 불참하는 것은 새로 편입된 주민들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행태이다. 지난 선거를 돌이켜볼 때 토론회를 거부하는 후보들은 대부분 흠결이 있어 토론회에서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말주변이 부족해 토론회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선거에서 토론회의 결과가 지지율에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서 토론회는 중요하다. 토론회가 두려운 사람이라면 출마를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언론사 토론회가 후보들이 만든 정책을 비교, 검증하는 대결의 장이라면 시민단체의 정책제안은 주민들이 직접 지역의제를 선정하여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충북지역의 시민단체들은 환경 분야와 정치, 경제, 농업, 여성, 청년, 문화, 복지, 노동인권, 이주민, 세월호 관련 등 10대 분야로 나눠 지역의제를 선정하여 충북지역에 입후보한 28명 후보들에게 제안하고 공약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후보 전원과 정의당, 민중연합당 후보는 답변서를 보내온 반면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무소속 후보들은 대부분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환경의제와 10대 분야에서 국민의당 1명, 무소속 1명이 답변서를 보내왔을 뿐이다.

이유야 어찌하던 70여개의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선정한 정책의제 질의서에 답변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권자를 무시하는 행위다. 시민들의 정책제안을 읽어보고 답변할 시간에 거리에서 큰 절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선택은 정책을 개발하고 실천하여 올바른 정치를 펼쳐보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고 감성에 호소하며 유권자에게 표를 구걸하여 당선이나 되고 보자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프랭클린 애덤스의 말이다. 지금 우리 유권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 누구를 찍어야할지 몰라 망설이며 투표를 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면 누구를 당선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투표장에 가자. 최선이 없다면 최악을 떨어뜨리는 선택이라도 하자는 것이다, 선거는 무혈의 혁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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