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든 생각
봄에 든 생각
  • 최준<시인>
  • 승인 2016.04.0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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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최준

낮이 부쩍 길어졌다. 겨우내 비어 있던 집 주위 논밭들에 쟁기를 들고 나온 농부들이 눈에 띈다. 산책길에는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운 나무들이 화사하다. 겨우살이가 어쨌든 계절은 어김없이 때를 맞추어 오고 간다.

이처럼 정연한 질서가 우리 사는 인간세에도 배어들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의 속 깊은 양보와 인정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리 잡아 치열한 삶의 열정이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지구 지킴이를 자처하지만 기실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지상의 무수한 생명을 위해(危害)하는 유일한 가해자나 다름이 없다.

옛 성현들이 실천했던 겸양과 청빈의 삶은 자연과 닮아 있었다. 자신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해 이승에서의 시간을 잠시 빌려서 의지하다 가는 것이라고 여겼다. 문명보다 자연 쪽에 더 마음을 기울였던 그분들의 삶은 긍정성으로 따스했고 놓음으로써 여유로웠다.

하지만 이제 우리 인류는 그런 분들을 만나기도 어렵게 됐다.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이기적인 탐욕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연장자들만 가득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어디에도 보고 배울만한 삶을 보여주는 스승이 없다.

종교는 말해 무엇하랴.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건 이타행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일 텐데 현실의 종교는 그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타인의 종교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그 마음 안에 대체 어떤 믿음이 들어 있을까. 그래도 종교는 인류를 더 이상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마지막 보루다. 순수한 믿음을 가진 많은 이들을 종교라는 그늘로 불러들여 자신의 지위와 영달에 이용하는 종교인들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그들이 곧 사탄이고 악귀에 다름없다.

시야가 푸른빛으로 젖어드는 좋은 봄날에 왜 이런 불순한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일까. 길섶에 옹송그리고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들처럼 이 땅에는 무명으로 살아가는 많은 선민이 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서로의 자리를 탐내어 곁눈질하지 않고 정직하게 생의 꽃 한 송이 피우려고 땀 흘리는 그런 이들 말이다.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면 바로 그런 이들이다. 이들에게는 양심과 선한 의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이의 삶을 자신의 영달에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

최소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이율배반적인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아간다.

국회의원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당신들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다면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후보들을 보면 그들의 욕망과 가치관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너나없이 경제를 앞세우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공언하는 그들에게는 돈만 쥐여주면 행복해진다는 이상한 논리가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일까. 왜 어느 누구도 진정한 행복은 물질이 아닌 정신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조금 부족하고 어렵더라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

자연의 순연한 질서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봄이다.

자연은 자연스러우니까 자연이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려는 조급함을 기다림으로 바꾸어놓을 그런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잘 산다는 의미를 가진 것 많다는 의미가 아닌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하는 국회의원 후보가 있다면 그는 낙선의 아픔을 겪게 될까.

밖에 나서면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서 자연의 현실과 사람 사는 세상의 현실을 비교해 본다.

겨울을 인내하고 제때에 잎을 틔우고 꽃피우는 한 그루 나무보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 건가. 아무리 넉넉하게 점수를 접어주어도 그런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부끄러운 산책길에 환하게 웃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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