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앓이
봄 앓이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4.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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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흔히 가을을 사색과 추억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봄 또한 이 못지않게 사람들로 하여금 지난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을이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서 자연스럽게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게 한다면, 봄은 자연의 생동과 행락(行樂)의 들뜬 기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상념에 빠지게 한다. 당(唐)의 시인 두목(杜牧)은 봄날 생동하는 경물들에 자극되어 애닲게 봄 앓이를 하였다.

 

 

안주 부운사 누각에서 호주 장낭중에게 (題安州浮雲寺樓寄湖州張郎中)

 

去夏疎雨餘(거하소우여) : 지난여름 성긴 비 갠 뒤에
同倚朱欄語(동의주난어) : 함께 붉은 난간에 기대어 이야기했었지
當時樓下水(당시루하수) : 당시에 누대 아래를 흐르던 물
今日到何處(금일도하처) : 지금은 어느 곳에 이르렀는가
恨如春草多(한여춘초다) : 나의 한은 봄풀처럼 우거지고
事與孤鴻去(사여고홍거) : 일은 기러기처럼 떠나버렸다.
楚岸柳何窮(초안류하궁) : 초땅 언덕 저 버드나무 어찌 없어지랴
別愁紛苦絮(별수분고서) : 이별의 슬픔 버들개지처럼 어지럽고 괴로워라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 시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지난여름 친구와 있었던 일이었다. 듬성듬성 내리던 비가 갠 뒤 붉은 칠을 한 난간에 나란히 기대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이 마치 봄날 싹이 돋아나 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그 친구와 함께 있었던 누대 밑을 흐르던 그 물은 지금 어디에 이르렀을까?

시인은 이 대목에서 상념에 잠긴다. 그때 그 물과 마찬가지로 그때의 그 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지금은 그 자리에 없다.

모든 것은 한순간일 뿐 영원할 수 없다는 무상감(無常感)이 시인을 짓누른다.

친구와의 정다웠던 시간도 한순간일 뿐이다. 물과 사람의 일은 흘러간다는 점에서 같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물은 남기는 것이 없지만, 사람의 일은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이다.

추억을 남기어 그것을 그리워하게 하고, 그리움이 해소되지 못하면 그것이 한(恨)으로 된다.

시인은 봄날 풀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그것에 자극되어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한이 많아짐을 느낀다.

친구와의 지난여름 일은 가을 기러기처럼 사라지고 없지만 그 일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은 한이 되어 봄풀처럼 돋아난 것이다.

그리고 그 한은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버들개지처럼 어지럽게 머릿속을 드나든다.

봄을 기다리고 즐기는 것도 인간이지만 생동의 봄풀을 보고 한(恨)을 떠올리고, 어지럽게 날리는 버들개지를 보고 이별의 슬픔을 되새기는 봄 앓이를 하는 것도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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