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사월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3.3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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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사월이다. T.S 엘리어트는 4월을 ‘죽음의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드는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대한민국의 사월은 그 어떤 달보다 상징과 수식이 많은 달이다. 누구에게는 벚꽃을 비롯한 각종 꽃 축제가 벌어지는 봄의 향연으로, 총선거를 치루는 정치의 계절로, 또 누군가에게는 ‘보국안민’‘척왜척양’의 깃발을 내세운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4.19혁명의 정신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4월은 또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세월호다.

2014년 4월 15일 오후 6시30분 인천항은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모든 선박들이 출항을 포기한 상태였는데, 승객 476명과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을 실은 세월호는 출항을 강행했다. 배의 안전점검표에는 차량 150대, 화물 657톤이라는 조작된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 16일 오전 10시30분경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는 침몰했다. 승객 476명중 172명이 구조됐고, 304명이 희생됐다. 그 중 아홉사람은 아직까지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실종자로 남아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참사 다음날인 4월 17일 현장을 찾았다. 거기에서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유가족과 국민 앞에 약속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2년이 지났건만 그 많은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어야했는지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렵사리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되고 특별법에 따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구성되었으나 예산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더니 정부와 여당에서 추천한 위원들의 전원 사퇴와 이미 합의된 특검도입조차 거부당하는 등 세월호 특조위는 난파선이 되었다. 지난 달 28일과 29일에 열린 세월호 청문회는 증인들의 출석거부와 부실한 답변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특조위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 청문회가 되고 말았다.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월호 인양작업도 기존 언론에는 단 한줄 보도되지 않고 있고, 유족들의 접근을 막은 채 진행되고 있다. 유족들은 사고 현장에서 1.6㎣ 떨어진 동거차도에서 망원경과 카메라로 작업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기막힌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며 진상규명을 철저히 하겠다던 철석같은 대통령의 약속은 한낱 공염불이 되고 만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재난사고가 아니다. 그 안에 대한민국이 오롯이 담겨있다. 무리한 화물적재와 세월호의 증축, 진도VTS의 허술한 관제, 구조의 골든타임 허비, 승객을 버리고 탈출하는 선원과 선장, 허둥대기만 하던 정부의 초기대응, 뒤늦은 구조작업, 언론의 타락, 그리고 무언가 숨겨진 것만 같은 비밀 등.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있고 온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새겨진 세월호의 진실을 풀어내지 못한다면 선진국을 향한 대한민국의 항해도 순탄치 못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한 이후 10년째 3만불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대한민국의 꿈이 턱밑에서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의 가치와 행복의 가치를 무시한 채 경제성장에만 매달려왔는데도 1인당 국민소득은 뒷걸음질 쳤고, 소득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으며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이 크게 늘어나는 반면 대기업과 재벌만 살찌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국 선진국이란 경제성장지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지수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의 아픔을 잘 치유하는 것은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세월호를 애써 외면해 왔다. 세월호의 상처는 유가족들만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상처이고 아픔이다. 그래서 세월호는 잊어야할 아픈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치유하고 새겨야할 교훈인 것이다. 그런데 4월 총선의 그 어디에도 세월호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세월호를 뺀 정치는 허구다. 세월호를 뺀 정치꾼들의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이번 총선거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월호를 잊지 않고 세월호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는 일이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던 신동엽 시인의 절규가 가슴을 울리는 참으로 맞이하기 힘든 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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