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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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6.03.3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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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반영호

야구의 시즌이 돌아왔다.

많은 스포츠 중에서 유독 야구를 좋아한다. 나와는 특별한 관계도 아니면서 특정한 한 팀을 정해놓고선 마치 내가 그 구단의 뭐라도 되는 양 열심히 응원한다. 가만히 혼자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면 대다수 사람이 그러하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패거리 문화에 익숙한 똥패(동패) 의식이 강한 데서 오는 건 아닐까.

야구광이 된 것은 군대 생활 중에 3년 동안 투수를 했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당시 한국인들은 축구를 제일 좋아했고 한국군들은 쉬는 날 축구시합을 많이 했는데 미국군들은 축구는 별로였고 야구를 주로 했다.

야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타 팀에 비해 인원이 극히 적었던 본부중대 소속이었던 나는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선수로 뛰게 되었다. 처음에는 쪽수를 메우기 위해 자리를 채웠다. 그러던 것이 몇 번 시합을 하다 보니 실력이 향상되었다. 놀랍게도 볼 구력이 좋고 스피드가 있다는 평을 들으면서 경기마다 주전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제대 후 다시는 공 던질 기회가 없었지만, KBO 시리즈나 메이저리그 게임을 관전하면서 대리만족을 한다.

야구를 좋아하지만 겨울이 오면 시즌이 끝나고 농구나 배구 등 실내경기가 시작된다.

TV 앞에서 농구를 좋아하는 아들과 배구경기를 보고자 하는 나는 채널 싸움이 빈번하다. 지난겨울 동안 꽤 티격댔는데 지난주 드디어 시즌이 끝났다. 마지막 날 우승팀에 대한 시상식이 열렸다. 대개 준우승팀은 라커룸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마지못해 선수 몇 명만 시상식에 참가해 트로피를 받는 게 전부다.

그런데 이날 IBK기업은행 선수들은 현대건설 선수들이 우승 기념 티셔츠를 다 입기도 전에 코트 한쪽에 줄을 서 있었다. 현대건설의 우승 기념촬영과 세리머니를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팀 삼성 라이온즈가 보여줬던 패자의 품격이었다. 당시 삼성 선수들은 더그아웃 앞에 줄을 서서 두산의 우승 시상식을 끝까지 함께했다.

기업은행은 지난 3년 중 두 차례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팀이다. 세 번째 우승을 노렸지만 맥마혼, 김희진의 시즌 막판 부상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2등을 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이정철 감독은 “부상으로 2명이 빠진 상황에서도 끝내는 경기에서 이겨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최선을 다한 2등이 1등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 감독은 “졌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지만 시상식은 길어야 10분 정도”라며 선수들에게 나가서 축하해주자고 했다. 이 감독 역시 “현대건설의 우승을 축하한다”고 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2012년 열린 미국프로농구(NBA) 챔피언결정전 5차전. 1승3패 벼랑 끝에서 또다시 패배 앞에 놓인 오클라호마시티 스콧브룩스 감독은 경기 종료 직전 의미 없는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그리고 선수들을 향해서 “고개 숙일 필요 없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며 마지막으로 우리가 할 일은 저 팀(마이애미 히트)을 챔피언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그들에게 악수해주고 인정해주자고 했다.

승자를 향한 2등의 박수는 스포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패자의 박수가 승자의 권리가 아니라는 것을, ‘승자독식’이 세상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스포츠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

삼성 라이온즈, 기업은행으로 이어지는 2등의 박수는 프로스포츠의 흐름이 돼 가고 있다. 이제 2등의 박수에 대한 1등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가 필요할 때다. 그리고 경기장을 찾았던 관객, 또한 TV 시청자에게 선수들은 감사해야 한다. 시즌 내 열렬히 응원했던 팬들이다.

기다리던 프로야구가 오늘부터 시작됐다. 올 KBO는 어느 팀이 우승할 것인가를 점쳐 본다. 그리고 이번엔 어느 팀을 응원할까 하고 괜한 고민을 해보는 것이다. 스콧브룩스 감독과 같은, 삼성 라이온즈나 기업은행 같은 매너가 짱인 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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