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싸움
나의 싸움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03.3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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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누구에게나 즐겨 읽고 되새기곤 하는 애송시(愛誦詩)가 몇 편 있겠죠.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우주의 사투리로 노래하는 시인이라 불리는 고은의 ‘그 꽃’이란 시와 같은 작품은 대표적인 보기가 될 겁니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공명(共鳴)을 표하게 하니까요.

“입에 머금자마자 눈빛이 달라지는 맛있는 음식처럼 읽는 이의 가슴에 즉각적인 울림을 불러일으키는 시가 좋은 시”라고 말한 김종해 시인의 인터뷰 기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제게도 애송하는 시가 있답니다. 신현림 작가의 ‘나의 싸움’이랍니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외로움이 지나쳐/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그의 처절한 싸움이 존재론적으로 다가와 제 마음을 아리게 만들더군요. 그의 시 ‘나의 싸움’에 대한 오마주(hommage)로서 글을 써 보기도 했답니다.

“삶이란 다시 태어나려고 싸우는 일이다//모든 이름의/권태와 허영과 유혹과 집착은/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짓고 만다//언제부터인가/자꾸 낯설어지기만 하는/부끄러운 자신은/거울을 피해 도망다닌다//찾아내야 하리라,/내일도 오늘도 어제도//지겨운 우울은 어서 꺼지라구!”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야겠지요. 너무 모자라서요.

최근 5년간 여성 독자들의 구매 데이터를 기준으로 인터넷 서점 인터파크도서에서 선정한 ‘여자가 사랑한 시인 10인’에서 3위, 여성 작가로는 1위에 오른 신현림이기도 하지만, 그가 SNS에 남기는 소회(所懷)를 보면 안타깝게도 일상에서의 그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껴안고 있는 어머니’라는 그림에다가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통곡’을 연결시킨 것도 신현림 작가였는데, 이 또한 그의 탁월한 싸움의 결과물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지은 시”라는 책에 대한 여러 후일담(後日譚)을 듣다 보면, 그의 싸움이 곧 나의 싸움이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이 솔솔 들더군요.

지난 1월에 어느 판화공방에서 열렸던 출간 기념 강연회가 끝나고 나서, 시와 그림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이유를 묻는 한 대학생 리포터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는 겁니다.

“제가 이번 강연에서 꼭 말하고 싶었던 건데요, 저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예술을 비롯해 모든 분야,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파격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은 유독 그런 부분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작품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새로운 시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다 보면 싸움을 피한다고 해서 꼭 능사(能事)는 아닐 듯하군요.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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