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좌절하기
행복하게 좌절하기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6.03.3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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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머리가 허연 경비원이 여고생에게 마른 고춧대 같은 허리를 숙여 보였다. 가방을 멘 학생은 인사도 받지 않고 휴대폰만 쳐다본다. 아파트 부녀회가 통로에 경비원을 세워두고 지나는 입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게 했다. 인근에 다른 아파트에서는 고급 승용차만 골라 인사를 시켰다. 다른 곳과 차별화된 생활 모습을 내세워 아파트 값을 올리려는 속셈이다. 경비원이 허리를 많이 숙일수록 자신들의 권위가 살아나고 아파트도 고급이 될 거라는 계산에서다.

인사(人事)는 사람이 사람에게 적절한 예를 갖추는 행동이다. 사람이 아닌 자본에 인사하거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허리를 숙이는 것은 굴종의 표시다. 동네 어른이었던 경비원들은 이제 대표적인 감정노동자가 되었다. 돈의 권위는 경비원들의 인권을 수시로 짓밟았다. 입주민의 욕설과 폭언에 힘들어하던 어떤 경비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주민들은 죽은 경비원 때문에 아파트 값이 내려갔다며 대놓고 짜증을 냈다. 고인에 대한 위로와 사과는 없었다.

돈은 사람의 됨됨이나 양심을 가리지 않는다.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은 돈이 따르는 사주를 타고났다고 한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대부분 가난한 데 비해 친일파의 후손들이 풍요로운 것을 보면 돈은 정의롭지도 않다. 돈만 있으면 인면수심의 사이코패스도 순진한 척 웃을 수 있고 개도 사람 구실을 한다. 그러니 체면과 염치를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돈 버는 일에 혈안이다. 권력 쥔 자들은 선거철마다 경제를 들먹이며 사람들의 돈 욕심을 표로 바꾸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본을 상속받은 자가 임금 소득자를 지배하는 불평등 사회가 된다고 전망했다. 이 불평등으로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자본 계급이 지배하는 봉건사회가 될 거라 염려했다. 임금 소득자는 자본 계급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개인이 계급 권력에 종속됐을 때의 처참함은 동서양이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인류를 야만의 역사에서 벗어나게 했던 근대 자본이 도리어 새로운 형태의 야만 사회로 이끌고 있다고 피케티는 경고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일부 천박한 상속 자본이 임금 소득자의 감정까지 지배하려 든다는 점이다. 이 비극의 전조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포착된다. 비행기 안이나 백화점, 음식점이나 편의점에서 자본에 따귀 맞고 무릎 꿇리고 모욕당하는 임금 소득자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학교는 인내와 복종이 자본주의에 꼭 필요한 덕목이며 사회성이라고 가르친다. 먹고살려면 할아버지 경비원이 여고생에게 허리 숙여 인사할 수도 있다는 고약한 논리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내 아이들도 상속 자본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편의점 직원이나 경비원들처럼 감정노동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깊이 좌절하다가 돈의 위력에 굴복하거나 나약하게 조바심칠 수도 있겠다. 학교에서는 우아하고 능청스럽게 좌절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으니까.

자본 권력이 자꾸 비대해지고 굴종을 요구해 오면 나는 차라리 가난을 택할 것이다. 자발적 가난에 돈의 힘은 미치지 못할 테니 내 아이에게도 그리하라 이르겠다. 우아한 가난에 돈의 권위는 조롱의 대상일 테니까. 스콧 니어링 부부처럼 자본 없는 행복을 몸소 실천해 보인 이들은 수없이 많다. 자식에게 가난을 택하라는 아비가 어디 있겠냐마는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깟 돈이 무슨 소용이랴. 틈나는 대로 아이들에게 행복하게 좌절하는 법을 가르쳐야겠다. 천박한 자본의 권위에 눌려 억울하게 죽은 경비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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