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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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6.03.2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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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황당했다. 번번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이다.

금전적인 손실도 억울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배신과 연민이다.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운영하면서도 매장에는 포장 고객 말고는 손님을 받지 않았다.

사람들과 얼굴을 부딪치며 가게를 운영해나갈 자신이 없어서였다. 전화 주문만으로 십여 년 넘게 배달만 해 왔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장난 전화 때문에 난처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고는 주로 방학 때 일어난다. 아이들은 긴 시간의 무료함을 장난으로 달래려는 심사인지 본인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거라는 것은 염두에도 없는 듯하다. 그래도 한 마리로 끝내주는 장난은 애교다.

이번에는 스케일이 달랐다. 녀석은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메뉴와 가격을 꼼꼼히 물어보았다. 그런 후에 각각 다른 메뉴로 4마리를 주문했다.

음료수가 부족할 것 같다고 서비스로 한 병을 더 요구하는 치밀함을 보이며 내 의심 안테나를 무력화시켰다.

가게로 되돌아온 치킨을 보니 화도 나고 기가 막혔다. 버릴 수도 없고 늦은 시간에 처리할 일도 막막했다.

휴대폰을 들어 불통인 녀석의 전화로 메시지를 보냈다. 지옥 같은 마음을 숨기고 정중한 어조로 문자를 작성했다. 끝으로 통장 계좌번호와 치킨 값을 입금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경고했다.

반응은 빨리 왔다. 신고한다는 말에 겁이 났는지 부모님이 알면 맞아 죽는다며 애원하는 메시지를 수십 차례 보내왔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자기는 잘못이 없단다.

다만, 친구의 친구에게 전화를 빌려 주었을 뿐이란다.

나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녀석이 이곳 청주가 아닌 전주에 사는 중3 학생이라는 것이었다.

녀석의 말을 종합해보았다. 부모님에게 알려지게 되면 휴대폰을 빼앗길 것과 맞을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일주일에 만원씩 갚을 테니 한 번만 믿어 달란다. 앞뒤가 맞지 않는 녀석의 궁색한 변명과 발뺌에 속이 상했지만, 폭력을 두려워하는 녀석이 측은했다.

혹시라도 녀석의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거나 친구들에게 왕따라도 당하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내 머릿속은 녀석이 처해 있을 것 같은 여러 상황을 추측하며 상상하고 있었다.

연민이 일어 녀석을 믿어보고 싶었다. 녀석을 위해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설령 누군가에게 전화를 빌려주었다 하더라도 장난전화를 걸도록 방관한 녀석에게도 절반의 금전적인 책임을 물었다.

녀석은 고맙다며 꼭 약속을 지키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하루가 지나고 삼사일이 지나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고민이 되었다. 녀석도 분명 불안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 터 차라리 훌훌 털어 아이를 맘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다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에 신고했을 때 그 녀석에게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알려주었다.

모든 사람이 모두 올바른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바른 선택만을 하면서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고 했다. 한순간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맘고생 했을 테니 잊어버리고 편하게 생활하라고 했다.

홀가분하다. 어쩌면 나는 아이를 편하게 해주자는 구실로 녀석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며칠이 지난 후 녀석에게서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아이의 짧은 메시지가 왜 그렇게 안심이 되는지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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