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힘
나이의 힘
  • 유현주<청주오송도서관>
  • 승인 2016.03.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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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유현주<청주오송도서관>

한 성당에서 신부님이 미사에 오신 70~80대 할머니 성도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몇 살로 돌아가고 싶냐고! 얼핏 생각하면 꽃다운 10대나 2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을 것 같지만 실제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많은 할머님이 50대를 꼽더란다. 10~20대에는 공부하느라 너무 힘들고, 30~40대에는 자식들 기르느라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50대야말로 황금기였다는 것이다. 자식도 장성하여 시간적 여유가 있는 데다 그동안 갖가지 세상 풍파를 다 겪어 봤기 때문에 무서울 것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어서 뭐든 맘만 먹으면 할 수 있으니 긴 인생 중 정말 행복한 때였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각각 300여 명의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자신들의 현재 상태에 대하여 행복의 등급을 매겨보라고 하자 70세 전후의 어르신들이 30세 전후의 젊은이보다 10% 이상 더 높게 등급을 매겼다고 한다.

오히려 어르신들이 젊은이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는 나이를 먹으면 뇌가 아주 능숙한 감정 관리자가 되기 때문이란다. 즉 좋은 기억은 더 오래 지속되고 나쁜 기분으로부터는 빨리 회복되는 성향이 있게 되는데, 좋은 일만 생각하려는 충동뿐만 아니라 나쁜 경험에 대해서는 일종의 건망증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나이 먹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직관(直觀)처럼 서글프고 안타깝게 생각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만,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에 매달리다 보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도 나이가 가진 힘이다.

그리하여 나쁜 경험이나 기억은 빨리 털어내고 내가 의미 있게 써야 할 시간과 내가 더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도 나이 들면서 터득하게 되는 지혜이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에서도 젊은 세포와 노화된 세포에 각각 독성 물질을 주입하는 실험을 통해 노화의 의미를 밝혀내는 재밌는 실험을 했다.

저강도 독성을 주입했을 때 젊은 세포는 반응했으나 늙은 세포는 반응하지 않았다.

독성 수치를 높였더니 젊은 세포는 반응하다 죽어버렸으나, 늙은 세포는 반응이 낮은 대신 죽지 않았다고 한다.

세포 역시 늙으면 현명해져서 오히려 외부 독성에 대해 강한 생존력을 보이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세포마저도 나이를 먹으면 현명해진다고 하니 우리도 그저 하루하루 시간이나 보낼 일은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물의 이치를 잘 터득하고 자잘한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으며 인생에 연륜이 쌓여 사려와 판단이 성숙해져 외부의 힘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도 귀담아들을 줄 알아서 도리에 어긋남 없이 행동할 수 있도록 곱게 나이를 먹어야 하겠다. 그래야 빛나는 청춘을 이길 수 있는, 인생의 과제를 모두 끝내고 제대로 놀 줄 아는 멋진 중년(中年)으로, 노년(年)으로 나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얼굴은 책과 같아서, 사람들은 당신 얼굴에서 당신을 읽는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제대로 나이를 먹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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