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원망
봄날의 원망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3.2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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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봄이 오면 풀이 돋고 꽃이 핀다.

이것은 자연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김이 있을 리 없다. 사람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봄이 오면 자연처럼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나면 좋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세상 이치 아니던가?

어김없이 돌아오는 봄의 화사함이 도리어 사람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도드라지게 한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봄날의 아픔을 잘 읽어내고 있다.



봄의 원망(春怨)

白馬金羈遼海東(백마금기료해동) : 황금 굴레 백마 타고 임은 요동 가버려

羅帷繡被臥春風(라유수피와춘풍) : 비단휘장치고 수놓은 이불을 펴 놓은

                             방에 봄바람이 찾아와 누워 있네

落月低軒窺燭盡(낙월저헌규촉진) : 처마 밑 지는 달은 지는 촛불 엿보는데

飛花入戶笑床空(비화입호소상공) : 꽃잎도 안방에 들어 빈 잠자리 비웃는다



주둥이에 황금 굴레를 씌운 하얀 말은 그 빛깔만으로도 귀티가 넘친다.

이처럼 귀한 말을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체가 높아도 보통 높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감히 탈 번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실제로 신분이 높은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여자에게 사랑하는 남자만큼 지체가 높은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주인공인 아낙의 남편은 아마도 군인 신분으로 동북의 변방인 요동(遼東)에 가 있은지 오래인 듯하다.

집에 혼자 남은 젊은 아낙은 차일피일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낙이 기거하는 방은 신혼 시절 모습 그대로이다. 창문은 비단 휘장으로 꾸미고, 침상에는 꽃과 나비, 원앙(鴛鴦) 같은 부부의 애정을 상징하는 경물들을 화려하게 수놓은 이불이 펼쳐져 있다.

이러한 아늑하고 로맨틱한 방의 모습은 남편이 신혼 초에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말해줌과 동시에 남편이 돌아오면 못다 꾼 신혼의 단꿈을 다시 꾸겠다는 바람이 강렬함을 암시한다.

그런데 오라는 남편은 오지 않고, 대신 봄바람이 슬며시 들어와 남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남편 없이 봄을 맞는 게 몇 해인지 모르지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서 아낙은 더욱 쓸쓸하고 외롭다. 그래서 밤이 꼬박 새도록 잠 못 이루고 있다.

새벽이라 처마 밑까지 내려온 달이 밤새 켜져 있어 다 타버린 촛불을 들여다본다거나 날아다니는 꽃잎이 남편 없이 텅 빈 침상을 보고 웃는다든가 하는 표현은 아낙의 외로움을 봄의 경관을 끌어 로맨틱하게 표현한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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