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과 동주의 여운
귀향과 동주의 여운
  • 김기원<편집위원>
  • 승인 2016.03.28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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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김기원<편집위원>

울었습니다. 슬퍼서 울었고, 분해서 울었습니다. 또 죄스러워 울었고, 부끄러워서 울었습니다.

절로 한숨과 신음이 터졌습니다.

나만 운 게 아니라 객석을 메운 관객들 모두 그렇게 울었고, 너나 할 것 없이 깊은 한숨과 신음을 마구 토해냈습니다.

아내와 함께 본 귀향과 문우들과 함께 본 동주의 울림이 이다지도 컸습니다.

귀향과 동주는 닮은꼴 영화입니다. 소재만 다를 뿐 일제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같고, 나라 잃은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그린 점이 같습니다.

귀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동화 같은 영화였고, 동주는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열사의 생을 그린 시 같은 영화였습니다.

귀향은 조정래 감독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75,270명으로 부터 후원을 받아 14년에 걸쳐 만든 아주 특별한 영화입니다.

흥행을 목적으로 만든 여느 상업영화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한 분 한 분의 넋이 돌아온다는 마음으로 제작했다는 조 감독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된 우리의 선량한 딸들이 무려 20만 명이나 됩니다.

그 중 살아 돌아온 이는 고작 238명뿐이고, 그나마 하나둘씩 생을 마감해 현재 40여명이 한 많은 목숨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황군을 수발하는 암캐일 뿐이라는 일본군 오장의 폭언장면과, 패망해 도주하던 일본군이 증거를 인멸코자 위안부들을 무참하게 죽이고 쓰레기 치우듯 불태우던 장면이 자꾸만 떠올라 지금도 치가 떨립니다.

산 자는 모두 그들의 빚쟁이입니다. 빚 갚는 길은 다시는 이런 불행이 없도록 부국강병한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보듯 전쟁은 미친 짓입니다. 그러므로 악행과 만행이 정당화되는 전쟁은 결단코 막아야 합니다.

아직도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 일본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반드시 북한의 핵 도발을 저지하고 남북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영화 동주는 이준익 감독 작품의 흑백영화입니다. 일제치하에서 시를 쓰며 고뇌하며 살았던 윤동주 시인과, 조국 독립을 열망하며 투쟁적 삶을 살았던 송몽규 열사의 삶을 수묵화처럼 그렸습니다.

송몽규 열사는 윤동주 시인과 같은 해에 태어나 함께 자랐고, 같은 해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교에 다녔던 동주의 친구이자 이종사촌 형입니다. 일본군대에 조선인 학사장교를 심어 훗날을 도모하려던 송몽규 열사의 의거계획이 발각되어 송몽규와 윤동주 시인이 일본경찰에 구금됩니다.

광복을 불과 6개월 남겨 두고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열사가 29살 젊디젊은 나이에 일본 후쿠오카감옥에서 의문사를 합니다.

‘나는 왜 이 시대에 태어나 시를 쓰고 시인이 되려 했는가'라는 윤동주 시인의 가슴 시린 독백이 호사스럽게 시를 쓰며 사는 제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팝니다.

위안부들의 처절한 삶과 윤동주 시인의 옥사는 일제가 이 땅에서 자행한 36년간의 양민학살과, 국권유린과 자원의 수탈, 민족정기 훼손의 일부분입니다만 시사 하는 바가 참으로 큽니다.

광복이 되고 세계 12대 경제 강국이 되었지만 귀향과 동주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귀향은커녕 상봉도 못한 이들이 태반이고, 동주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하는 수많은 청춘이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귀향과 동주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내일을 향한 오늘의 반성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못 봤다면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귀향과 동주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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