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풍경으로
하나의 풍경으로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6.03.2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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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월정리 해변의 바람은 봄바람이다. 옷섶을 헤집던 육지의 칼바람이 아니다. 피부에 닿는 바람이 부드러워 백사장을 걷는 발걸음에 절로 흥이 실린다.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이 밀려오는 파도에 흔적 없이 사라진다. 마치 바다와 하늘이 경계가 없는 듯 하나인 것처럼. 방금 잉크를 풀어놓은 듯 눈물이 나도록 창창하다.

아마도 저들은 태초부터 하나였으리라. 이름 짓기 좋아하는 인간이 편의상 ‘바다’란 이름으로, ‘하늘’이란 이름으로 갈라놓았을 뿐. 나는 지금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하늘 아래 서 있다. 파도의 물거품이 바람에 날려 한 점 얼굴에 닿기만 해도 바로 푸른 물이 들 것만 같다. 아니 이미 난 그 속에 있기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온몸에 푸른 물이 가득 듣는다.

그래, 살면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풍경이 어찌 한둘이랴. 아니 자청하여 풍경 속으로 뛰어들어 감흥을 받았던 적이 여러 번이다. 도시의 삶에 절어 전전긍긍하다 보니 그 정서를 잊고 지낸 탓이다. 밤늦게 요가를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바라본 초승달이 떠오른다. 느티나무 가느다란 가지 끝에 달린 달의 풍경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흥을 일으킨다. 그 감흥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재주를 탓하며 초승달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초승달은 정녕코 차디찬 겨울에 운치를 더하는 것 같다. 코끝이 찡하도록 맵싸한 공기와 낙엽이 한 장 달리지 않은 빈 나뭇가지 위에 달이 떠오르면 금상첨화다. 가지 끝에 절묘하게 떠오른 초승달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현듯 중국의 시인이자 사학자인 곽말약의 기발한 시가 생각난다.

초승달이 낫 같아/ 산마루의 나무를 베는데/ 땅 위에 넘어져도 소리가 나지 않고/ 곁가지가 길 위에 가로 걸리네

그의 상상력은 초승달로 나무도 베게 한 것이다. 이 얼마나 신선한 발상인가.

같은 달을 바라본 나의 빈약한 상상력은 앙상한 가지가 실이 되고, 가지 끝에 보름달이 닿아 두둥실 풍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간다. 아니면 어둠 속 나그네의 발길을 밝히는 가로등처럼 서 있기도 한다.

밤하늘에 변함없이 떠오른 달은 예인의 시선에 따라 낫이 되고, 풍선이 되고, 가로등이 되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주된다.

다시 느리게 걷는다. 백사장은 아주 고운 모래로 옅은 베이지 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 푹신하다.

모래 위를 가만가만 발자국을 남기며 바다 쪽으로 나아간다. 바다란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요한 살아 있는 형이상학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바라볼 때마다 못마땅한 자신을 잊게 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광막함. 봄바람처럼 다가와 상처를 핥아주고 체념을 부추기는 닿을 수 없는 자연의 무애를 확인한다. 나는 자연이 그려준 풍경 속에서 순진무구로 되돌아온다.

자연은 인간을 거의 배신한 적도 버린 적도 없다. 다만 인간이 자신의 필요로 바다에서 위안을 받는다.

무시로 내가 숲을 찾아들 듯. 나는 정녕코 자연 속에 있을 때 나의 정체성을 찾는 듯싶다.

내가 가장 나다워질 때가 언제인가. 자연과 하나의 풍경으로 서 있을 때다. 오늘도 자연은 나에게 맑은 생각 한 자락을 들려주고 싶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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