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코가 제일 길까
누구의 코가 제일 길까
  • 이수안<수필가>
  • 승인 2016.03.2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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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수필가>

서연이가 공연을 관람하고 왔다. 어린이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음성예술회관으로 가끔 단체관람을 간다. 지난달에는 <오즈의 마법사>를, 이번에는 <피노키오>를 보고 왔다.

길어졌다가 짧아졌다 하는 피노키오의 코가 네 살 동심을 사로잡았나 보다.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손을 쭉 앞으로 내밀며 코를 늘리는 흉내를 낸다.

“할머니, 피노키오 코가 이렇게 쑥 나왔어요.”

“저런 딱해라, 그래서 어떻게 됐니?”

“그런데 거짓말을 안 했더니 다시 들어갔어요.”

공연 관람의 감동이 컸던지 서연이는 쉬지도 않고 조잘조잘한다. 나쁜 사람이 피노키오를 잡아갔다, 고래 뱃속에서 아빠를 만났다, 착해졌더니 사람이 되었다. 등등.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싱거운 생각이 떠오른다. 만일 거짓말을 할 때마다 실제로 사람의 코가 길어진다면 내 코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했던 나의 거짓말. 살면서 내가 한 거짓말을 몽땅 들추어낸다면 내 코의 길이는 아마 석 자도 넘지 않을까. 거추장스러운 코를 어깨에 걸치고 쩔쩔매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한 술 더 떠 나와 비슷한 길이의 코를 가진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또는 도심 거리를 메운 풍경이 떠올라 비실비실 웃음이 나온다.

내친김에 상상력을 확장해본다. 어떤 사람이 가장 정상에 가까운 코를 가졌을까? 우선 노인, 처녀, 장사꾼의 코는 정상적이거나 길어도 아주 조금만 길지 않을까 싶다.

그 이유는 첫째, 노인이 죽고 싶다고 하는 말은 이제 거짓말이 아닌 경우가 많다. 노인빈곤 시대를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일이 많아졌기에 하는 말이다.

둘째,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고 하는 말도 옛말이 되었다. 높은 청년 실업률은 청년들의 연애와 결혼 여건을 어렵게 해 결혼 연령이 자꾸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셋째,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도 참말인 경우가 많아졌다. 오죽하면 문을 닫는 소상공인이 많다는 뉴스가 번번이 나오겠는가. 물건값에서는 조금 남긴다 해도 가게 월세, 재고상품, 직원 아르바이트 비용 등까지 고려하면 실제로는 밑지고 파는 일도 허다한 것이다. 그러니 노인, 처녀, 장사꾼이 우리나라 삼대 거짓말을 한다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고 본다.

반대로 코가 긴 사람이 가장 많은 동네는 어디일까? 얼핏 생각해도 정계 쪽이 아닐까 싶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서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모르쇠하기 일쑤요, 선거 때 핏대를 올려가며 외치던 공약도 당선만 되면 모르쇠로 변심하는 동네. 그러나 그 모르쇠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하는 거짓말일 공산이 크다. 그러니 툭하면 하는 거짓말에 덩달아 코도 쑥쑥 길어질 터이다.

이제 사월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떤 이는 그놈이 그놈이라 뽑아 줄 놈이 없다고 했다. 그렇더라도 그중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후보를 찾아 투표는 해야 한다.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길대로 길어진 코쟁이들이 선택받는 것을 방관하는 일이 될 것이다. 긴 코를 둘 곳이 없어 목도리처럼 둘둘 감은 피노키오들, 그런 희한한 모습의 국회의원들이 우리 국회를 메운 진풍경을 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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