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주가 운다
작은 동주가 운다
  • 이영숙<시인>
  • 승인 2016.03.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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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이영숙<시인>

동주의 별이 가슴에 들어와 이슬처럼 구른다. 후쿠오카 교도소의 철장 사이로 떨어지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 녹슨 구리거울처럼 푸른빛을 잃어가던 시인의 두 눈으로 차가운 별의 결정이 박힌다.

영화관 앞줄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듯 끄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로 보이는 소년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울음이 뚝뚝 떨어진다.

함께 온 소년의 어머니가 아들의 어깨를 폭 감싼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에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늘 눈물샘이 깊다고 툭툭 치던 남편도 오늘은 연방 휴지를 건네주며 이따금 눈을 허공에 건다. ‘동주’가 겨울 지푸라기처럼 푸석거리던 메마른 감성에 불을 지피고 모두를 울게 한다.

‘동주’ 여파로 윤동주와 김소월 시집을 찾는 학생들이 늘고 서점에서 완판 될 정도라니 시를 쓰고 글쓰기로 삶을 나누는 선생으로서 감동할 일이다.

일일 교수학습지도안의 계획을 변경하여 ‘하늘’을 주제로 시 쓰기 시간을 마련했다. 밤하늘을 한 번도 자세히 본 적이 없다는 학생은 동주 이후 하늘을 자주 본다고 했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태양과 달 하나가 어떻게 이 큰 지구를 따뜻하게 하는지 신기하다는 3학년 학생의 표현이 재미있다.

좀 더 큰 6학년 학생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은 이 땅에서 사라져 간 사람들의 눈인데 가장 흔들리며 빛나는 별은 동주 시인의 눈이고 가장 크고 강한별은 송몽규 시인의 눈이라고 표현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고종사촌 간이며 동년배 친구로 한집에서 문우 지정을 쌓으며 성장했다. 문학의 라이벌인 송몽규는 일찍이 193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분에 술가락(숟가락)으로 당선한 바 있다.

혼수로 가져온 은 숟가락까지 잡혀 오랜만에 차린 밥상인데 정작 아내는 숟가락이 없어 밥을 먹지 못한다는 일제강점기하 조선 민중의 웃픈 이야기다.

영화 ‘동주’ 이후 시를 써서 들고 오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어떤 학생은 아예 시노트를 만들고 날마다 한편씩 써서 보여준다.

하늘에 대한 시를 쓰면 하늘이 들어오고 꽃에 대한 시를 쓰면 가슴이 온통 꽃밭으로 변한다는 아이들, 그들의 가슴에서 봄이 오는 중이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는 사람을 벗으로 두지 않는다. 슬픈 장면을 보고 감성이 분출하여 온몸으로 흐느끼는 아이, 아이의 눈물 그대로 시가 아닌가.

그들이 만들어내는 21세기는 ‘별 헤는 밤’처럼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불평즉명(不平則鳴)은 당나라 문장가 한유의 문학이론이다. 그는 각 시대의 우수한 시인과 작가들은 역사상 가장 훌륭하게 운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초나라가 망할 때는 굴원이 울었고 한나라 때는 사마천이 울었고, 당나라 때는 이백과 두보가 울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무수한 시인과 작가들이 울었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주권을 빼앗긴 시대를 아파하며 울었고 이육사 등이 초인을 주장하며 이국의 감옥에서 울었다.

세상이 불온하면 시인들이 운다는데 21세기는 아이들이 운다. 밖을 향해 흐르는 이타적인 눈물이다. 장래희망이 시인이라는 제자의 가슴에도 바람을 새긴 별 하나, 별 둘 스며드는 밤이다. 오늘 밤에도 동주가 감옥의 창살 사이로 보았던 그 별들이 바람에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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