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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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6.03.2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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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영화 러브스토리를 관람하면서 울었던가, 단성사에서 봤던 선샤인의 장면들도 선명하다.

1970년대에 상영되었던 두 영화의 줄거리는 한 줄기였다. 청춘남녀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혼하지만 짧은 시간 행복하다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려 끝내 이별하는 슬픈 영화다. 요즘 나는 애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고전영화 속으로 들어가 완벽한 조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새벽의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울고 있는 내게 믹스커피 한잔을 타 주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중년의 남자가 있다. 대합실 한쪽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그는 타인들의 이별모습에 익숙할 터이다. 누구나 떠난다는 그 남자의 말에, 따뜻한 마음을 얹어 주는 고마움에, 뜨거운 커피만큼이나 뜨거운 눈물이 쏟아진다.

결혼식을 사 개월 앞둔 지난 연말이었다. 아일랜드청년인 작은사위에게 암이 발견되었다. 모두가 당황했다. 한 달 새 두 번의 수술을 했으나 치료도 해볼 사이 없이 빠르게 온몸으로 전이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암이란다. 한국에서는 아무런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의사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사위는 직장일이 정리되는 대로 가족이 있는 아일랜드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치료를 해보기로 결정하며 오히려 슬픔에 빠진 나를 위로했다.

결혼식을 사십여 일 남겨놓고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며칠을 망설이다 어쩔 수 없이 계획했던 모든 일을 취소했다. 그리고 떠나기 사흘 전 그들은 혼인신고를 했다. 사위에게 남은 유한한 시간은 일 년이었지만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아는 우리 가족은 개의치 않았다. 결혼을 허락해 줘서 고맙다고 넙죽 절을 하는 사위에게 너를 정말 사랑해서 내 딸을 함께 보내니 열심히 치료하고 다시 돌아오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안쓰럽고 아까운 사위가 딸보다 일주일 먼저 떠나는 날 나는 버스터미널에서 눈물로 배웅했다.

두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아 갈라놓을 수 없다. 수 천생을 반복한다 해도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는 듯이 딸은 칼끝 같은 사랑을 용기 있게 잡고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 책임을 다하려 짐을 싸고 있다. 결혼식도 하지 못하고 혼인신고만으로 낯선 타국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울지를 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밝은 사람처럼 씩씩하게 행동하지만, 가시밭길을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딸의 슬픔을 왜 모르겠는가.

슬픈 영화 같은 지금의 시간이 딸에게는 넘어야 할 역경이다. 역경에 처하면 관점도 크게 바뀌고 성장과 발전의 계기도 되리라. 때로 역경은 역설적이게도 뜻하지 않은 선물을 갖다 주지 않던가. 딸의 선택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어서 두 사람이 환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것임을 나는 믿는다. 겨울이 지나면 당연하게 봄이 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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