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참 어른 채현국
이 시대의 참 어른 채현국
  • 임성재<칼럼니스트>
  • 승인 2016.03.24 1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논단
▲ 임성재

지난 23일 충북NGO센터에서 효암학원 채현국 이사장 초청 강연이 있었다. 팔순을 넘긴 분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말씀에 빠지다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자그마한 체구에 검은 베레모를 쓰고 수수한 옷차림에 묵직한 가방을 메고 다니는 멋이라고는 한 점 찾아 볼 수 없는 이 노인이 왜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인지를 확인하는 데는 긴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채현국 선생은 세상에 잘 알려진 분이 아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칭찬하거나 내세우는 일을 즐겨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고 청년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 도계에서 흥국탄광을 운영하여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돈을 벌었다. 유신시절에는 잘 나가는 사업가였으면서도 정보기관에 쫓기는 수배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주고, 운동단체에 운영비를 지원하고, 해직기자들에게 집까지 사주는 민주화인사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러던 그가 사업을 접으면서 학원만 남기고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하여 직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지금은 경남 양산에 있는 개운중학교와 효암고등학교를 운영하는 효암학원 이사장이고 신용불량자이다.

속물적 관심사의 발동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즈음으로 보면 거의 재벌에 준하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어떻게 직원들에게 다 나눠줄 수 있었는지가 제일 궁금했는데 선생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나눠 준 게 아니라 원래 주인에게 돌려 준거예요. 자본주의는 재산을 자본가가 독차지하는 체제지만 원래 재산은 세상 거예요. 이 세상 것을 내가 잠시 맡아서 운영할 뿐 이었지요. 그러니까 세상에 돌려줘야 하는 거죠.” 1972년 유신이 선포되자 더 이상 사업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모든 사업을 정리했다고 한다.

돈을 벌어 보니까 ‘돈 쓰는 재미’보다 ‘돈 버는 재미’가 몇 천배 강한데 유신치하에서 돈 버는 재미에 빠지면 권력의 노예가 될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돈 버는 재미에서 나를 건진 이기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한 거예요.” 전 재산을 종업원에게 나눠 준 일을 기부니 나눔이니 하는 속물적 정의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고 딱 잘라 말한다.

사업을 정리하고 40여년을 존경받는 교육자로 살아온 선생의 교육관은 무엇일까 말씀을 듣던 현직 선생님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성적 좋은 학생이 아니라 공부 잘 하는 학생으로 키우세요. 학교에서 말 잘 듣는 순종만 가르치지 말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저항과 반항을 가르치세요.” 선생의 대답은 간결하고 명쾌하다. 성적이 곧 공부가 아니다. 성적만 지향하는 교육은 권력의 노예, 자본의 노예를 만들기 쉽고 성적이 좋아 일류대학 나왔다고 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 선생님들은 학생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고 싶게 만들라는 것이다.

또 청년들에게도 용기를 가지라고 말한다. “청년들에게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니 하는 것은 언론들이 광고 장사를 해먹기 위해 만들어낸 말입니다.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면서 청년들에게는 기존의 가치관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시대가 달라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청년들에게 권력의 노예, 재벌의 노예로 살기 위해 매달리기보다는 노동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노동의 가치를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세상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선생께서 요즈음은 전국을 다니며 강연에 열중이다. 지금 우리사회를 보면서 시민들의 자각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온 민중의 힘은 우리 사회를 변혁시켜왔다. 시민들이 침묵하면 사회 변혁은 일어나지 않는다. ‘비폭력 혁명’이라고 말하는 총선거 투표를 앞둔 지금이야말로 시민들이 침묵하지 말고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

단호하고 거침없는 선생의 말씀을 들으며 어쩌면 그렇게 멋지게 늙을 수 있냐고 물으니 순박하면 된다며 현명한 사람이 순박하다고 말한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자유로운 마음으로 신나게 살라고, 행복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행복은 쟁취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란다. 다 옮기지 못한 말씀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다 나누어줄 수 있는 분, 호령하고 높은 곳에서 자신을 빛낼 수도 있지만 스스로 낮아져 세상을 향해 희망을 말하는 팔순의 자유로운 청춘 채현국 선생, 참 어른을 만난 가슴 뭉클함이 오래도록 남을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