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새벽길, 혹은 정상과 비정상
봄의 새벽길, 혹은 정상과 비정상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3.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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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여명의 새벽 산책길. 등 뒤로 봄밤이 서러운 기차가 지나고 있다. 언 몸을 풀어낸 냇물은 힘차게 소리치며 흐르고, 발밑은 어느 틈에 연초록 아우성이다.

봄이 오는 새벽. 물안개 하늘거림이 신비로운데 희끗희끗 하늘로 번지는 실루엣이 봄이 오는 새벽을 더디게 한다.

참 아름다운 새벽. 봄 길을 걸으며 안개를 뚫고 먼 산에서 찬연한 모습을 드러낸 해를 보면서 감탄하는 사이. 그런 처연함이 너무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이어지면서 인내의 한계를 느끼다.

서럽다.

어쩌다 이처럼 모질고 잔인한 세상에서 호흡하고 있음이….

딸을 살해하고, 암매장하고, 또 그걸 숨기려는 비통한 세월. 저항하거나 몸을 피할 힘도 없는 어린이의 목숨을 끊어내고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뻔뻔함이 치를 떨게 하고, 그런 사람들과 한 세상을 살고 있음이 서럽다.

세상은 이미 정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인가.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구별되지 못하는 세상의 한복판에 나와 내 자식들, 그리고 부모 형제, 동료와 지인들이 발가벗겨진 채로 놓여 있다.

사람들은 늘 정상을 꿈꾼다. 한없이 오르려고만 하는 정상도 있고, 이상이 아닌 정상의 상태에 있다는 확신에 빠져 사는 듯도 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정상과 이상의 구분 대신 정상과 비정상을 대치시키면서 위험과 안전을 경계 짓는다. 비정상적으로 구분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위험한 인물이거나 불안한 상황으로 간주해 몰아내거나 사회적 고립을 시도한다.

그런데 이런 세상이 과연 정상인가. 자식을 포함한 가족의 목숨을 빼앗거나, 힘없는 부녀자를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부지기수인 이런 세상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가.

그런 비정상의 사회에서 정상이 미화되는 일은 도무지 부질없다. 아니 어쩌면 비정상의 사회일수록, 그리고 비정상적 인간일수록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는 정상 성을 추구하는 법이다. 나쁜 사람이 비정상으로 평가되는 세상은 차라리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폭력과 인간이기를 포기한 친족 살인 등의 비정상적 만행은 권력에 따라 제멋대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미쳐 돌아가는 듯한 세상. 이 지독한 광기(狂氣)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욕망을 버리고 말 그대로 서로 서로가 조직폭력배의 문신처럼 ‘차카게 살자’를 차라리 표어처럼 새겨야 하는 일은 아닌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그런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살기조차 어렵다면 차라리 자본에 함몰하는 탐욕도 버리고, 또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비교하는 일조차 자제하며 자신을 스스로 갈고 닦는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라와 사회가 서둘러 정상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만이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을 선택하기 위한 선거 참여는 차라리 혁명보다 훨씬 쉽다.

봄이 이제 시작이다. 하여 새벽 산책길 춘흥으로 정상의 호흡을 다스리는 일도 무겁다. 그래서 찾아 읽는 시 몇 줄. <전략> 꽃을 바라보는 일은/ 지상의 모든 꽃을 사랑하는 일/ 그 찰나의 떨림을 보는 일// 온 가슴으로 그 떨림을 안는 일// 나머지는 천지간을 떠도는 시간의 몫으로/ 남겨두고. <김형술. 몸을 던지다. 부분>

세상도, 그리고 세상 누구에게도 봄은 그냥 봄이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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