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그대에게
멀리 있는 그대에게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3.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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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봄은 소생의 계절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파랗게 잎이 돋아나고, 메말랐던 대지에는 연록의 풀들이 앞다투어 고개를 디밀고 나온다.

겨우내 숨죽였던 꽃망울들은 일제히 그 요염한 자태를 터뜨린다. 어디 이뿐인가? 고요하기만 했던 산속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온갖 새들의 울음으로 가득하다.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무성에서 유성으로 옮아가는 자연의 변모에 발맞추어 사람들의 마음도 서서히 무감에서 유감으로 바뀌어간다. 봄 버들가지 춘사(春絲)가 봄 그리움 춘사(春思)와 동음인 것은 우연만이 아니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는 멀리서 불어온 봄바람에 멀리 있는 친구에게 편지 보낼 생각이 솟구쳤다.



멀리 있는 그대에게6(寄遠6)


陽臺隔楚水(양대격초수) : 양대는 초수의 건너편에 있고

春草生黃河(춘초생황하) : 봄풀은 황하에서 돋아나는구나

相思無日夜(상사무일야) :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 밤낮이 없고

浩蕩若流波(호탕약류파) : 일렁임이 흐르는 물결 같구나

流波向海去(류파향해거) : 흐르는 물결은 바다를 향해 가니

欲見終無因(욕견종무인) : 보려고 해도 끝내 만날 길 없구나

遙將一點淚(요장일점루) : 아득히 한 줄기 눈물을

遠寄如花人(원기여화인) : 꽃 같은 사람에게 멀리 부치어본다




시인이 있는 곳은 북쪽 황하(黃河) 유역이고, 시인이 그리워하는 상대는 남쪽 초수(楚水) 건너편에 있다.

거리로 치면 수천리 떨어져 있다. 그러니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하필 때는 꽃 피는 춘삼월이다. 삭막한 황하(黃河) 유역에도 봄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었다. 때맞추어 시인의 마음엔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싹이 트고 있었다. 한번 발동이 된 그리움 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인을 괴롭혔다.

처음엔 잔물결 같았던 그리움의 물결은 어느덧 황하라는 큰 강을 흐르는 물결이 되어 일렁거렸다. 그리움의 큰 물결이 바다에 다다르도록 그리운 사람을 만날 방도는 없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한 점 눈물을 편지지에 실어 멀리 있는 꽃다운 사람에게 보내고 마는 것이다.

봄철, 대지에 풀이 돋아난다면 사람의 마음에는 그리움의 씨앗이 싹튼다. 돋아난 풀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 듯, 그리움의 마음도 날마다 늘어난다. 이럴 때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는 것도 봄 상사병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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