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겼다 잘생겼어!
잘생겼다 잘생겼어!
  • 여은희<제천시문화관광해설사>
  • 승인 2016.03.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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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장락동 7층 모전석탑

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여은희<제천시문화관광해설사>

우리고장의 지정문화재 72점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탑이 3기가 있다. 모두 시대와 모양의 특징을 고루 갖춘 보물이지만, 장락동에 위치한『장락동 7층 모전석탑』은 시내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탑이다.

불교가 전래된 지 1600여년 장구(長久)한 세월이지만 낯설음이 적지 않아 먼저 불교 문화재의 정점 이라고 할 수 있는 탑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자.

탑은 인도에서 처음 만들어 지게 되는데 석가모니 80세 때 인도 쿠시나가르 사라쌍수 아래에서 입멸 후 유해를 화장한 다음 인도의 여덟 나라가 사리를 차지하기 위해 쟁탈이 일어났다. 이 때 제자 도로나 불타의 제안으로 사리를 똑같이 여덟 나라에 나누어 주어 이를 분사리 또는 사리팔분 이라 한다.

각 나라는 사리를 정성스럽게 봉안할 수 있는 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사리를 담았던 병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탑인 병탑과 부처님 다비식 후 남은 재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탑 회탄 탑을 세워 모두 10개의 탑이 만들어지고 불교 탑파의 시원이 된다.

100 여년 후 대인도 제국을 건설한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왕은 불사리를 안치한 8기의 탑 중 7기의 탑을 해체하여 사리를 꺼내 8만4천으로 나누어 전국에 걸쳐 8만4천개의 사리탑을 세워 불교를 크게 융성시키고 전파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렇듯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나 유골을 뭍고 그 위에 돌이나 흙을 높이 쌓은 무덤이나 묘(廟) 이다.

인도의 탑이 중국으로 전래되어 그릇을 엎어놓은 모양의 복발형(復發形) 인도 탑은 탑의 가장 윗부분인 상륜부에 계승되었으며 탑의 몸체가 되는 탑신부는 누각식 건물형태를 취하게 되어 새로운 형식의 전탑이나 목탑들이 만들어져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게 되었다. 이후 깎은 돌이나 벽돌 등으로 층을 지어 쌓으며, 3층 이상 홀수로 층을 올렸다.

불교가 전래되는 모든 나라의 탑 속에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실 수 없었으므로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사리나 불경, 작은 불탑, 불상 등 불교를 상징하거나 진신 사리와 같이 공경이나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모시게 되어, 모든 탑 속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석가모니의 사리를 넣기 위해 돌을 쌓아올린 부처의 무덤에서 유래된 탑은 불상이 조성되기 전까지 불교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자, 그럼『장락동 7층 모전석탑』이라는 알 듯 모를 듯 하다 이름부터 풀어보면 장락동은 당연 위치를 알리는 것이고, 칠층은 일곱 개의 층수를 이야기한다. 모전은 벽돌을 흉내 낸, 모방한, 돌로 만든 탑 이라는 뜻이다. 이름에 있는 대로 탑을 살펴보면 사찰에서 흔하게 만나는 화강암의 석탑과는 거리가 멀어 우리나라에도 몇 기 남아있지 않은 귀한 탑이다.

이 탑 앞에 서면 ‘잘생겼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넓은 폐사지에 우뚝하니 서있는 웅장하고 흐트러짐 없는 단아한 모습은 볼수록 참 잘생겼다. 우리고장에 이런 탑이 남아있다는 것이 놀라움과 무한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1967년 6월 23일 보물로 등록된 이 탑은 아쉽게도 세워졌던 사찰이나, 초창 시기와 관련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제천 장락리 모전 석탑 기단부 조사 자료와 제천시지, 충청대학 박물관에서 2003년 실시한 시굴조사와 2004년~2008년 까지 3차례에 걸쳐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리해본다.

고대의 사찰은 사원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군사·경제적인 역할도 수행하여 중요한 거점 지역에는 사원이나 석탑을 건립, 고대 교통로 상에 남아 있는 석탑의 대다수를 전탑과 모전석탑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수많은 석재들이 겹쳐져 결구되는 특성상 강한 내구성을 갖게 되어 높게 쌓을 수 있기 때문으로 주로 낙동강과 남한강 수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장락사지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구산선문 중 사자산문의 도량인 흥녕선원(현. 법흥사)이 있고 수로 교통과 주변의 육로가 발달해 교통이 편리하여 충주와 단양을 거처 흥녕선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장락사지를 통과해야만 했으므로 두 사찰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장락동 7층 모전 석탑』이 위치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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