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신의 한 수
  • 반영호<시인>
  • 승인 2016.03.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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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반영호

30년 동안 쓰던 재단기를 교체했다. 무쇠로 주조되어 튼튼하기 이를 데 없지만 너무 커서 장소를 많이 차지하고 수동이므로 사용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던 터에 상태 좋은 중고 전자동 재단기가 나왔다. 컴퓨터가 내장 되어 있는 최신이다.

이런 기계가 왜 중고로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소유하고 있던 출판사가 부도가 났다고 한다. 급매라 가격도 저렴하고 기회다 싶어 놓칠세라 들여놓았다. 화면이 전부 일본어로 되어 있어 당황했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중국제품에 사용설명이 한자로 되어 있어 대략 이해되듯이, 일본어의 표기도 한국어를 표기할 때 한자와 한글을 병용하는 이치와 비슷하다. 히라가나(ひらがな)와 가타카나(カタカナ)를 사용하고 있어 비교적 복잡하다고 할 수 있으나, 명사·동사·형용사 등은 한자로 표기하므로 웬만한 건 이해가 된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나 처음 대하는 일산 기계를 작동시키는데 꼬박 삼일이 걸렸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이러다가 컴퓨터가 꼬여 먹통 되는 건 아닌가. 조심스럽기도 했다. 손재주가 있어 기계 만지는 걸 좋아하지만 이건 기계이기는 하나 전자계통이라 생소하므로 손재주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입력을 마치고 나니 정말 신기했다. 내가 입력한 숫자를 기억하고 한 치의 오차 없이 버튼 하나로 척척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A5사이즈를 명령하면 297×210mm에 맞게 우변 1mm. 상, 하 각각1mm를 연속적으로 알아서 커트해 준다. 한번 입력된 규격은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내 수고 없이 단추 하나로 해결된다.

A3하면 297×420mm. ?5는 148 x 210mm. B4하면 257x 364mm. B5는 182x 257mm. B6는 128 x 182mm. 이런 정규격 외에도 어떤 사이즈든지 입력만 하면 기억해 두는 것이다.

지난 15일 전 세계의 주목 속에 바둑의 신으로 불리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이 끝났다. 첫 대국이 있던 9일 오후부터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TV를 통해 내내 5국까지 시청했었다. 첫날 전 세계가 놀랐다. 바둑의 신으로 불리는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패했다. 그리고 연거푸 내리 3국을 불계승으로 패하더니 4국에서 1판을 신의 한 수로 극적으로 승리헸지만 마지막 5국에서 다시 패했다.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에 인간이 진단 말이가?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유럽 바둑 챔피언인 판후이를 이기면서 자신의 실력을 뽐냈지만 프로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많은 기보를 통해 학습했다 하더라도 이세돌 9단이 가진 직관과 상상력을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불과 5개월 만에 자신의 능력을 이세돌과 맞먹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한다. 알파고는 3000만 건이 넘는 기보를 입력한 뒤 이를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 기법을 적용했다. 바둑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의 170제곱으로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를 합친 수보다 많다. 수가 많은 만큼 이를 모두 시뮬레이션할 수 없기에 알파고는 기존 기보를 통해 형세를 읽고, 무작위로 추출한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한다. 인간의 직관을 흉내 내는 판세 이해 능력, 가치망을 통해 형세를 판단하는 능력 등 알파고는 인간의 뇌를 가장 가깝게 흉내 낸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 로봇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1984년 제작된 터미네이터이다. 터미네이터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이야기로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1999년 개봉된 ‘매트릭스’는 대표적인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영화로 2199년 미래를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가 지배한다는 내용이다.

이번에 구입한 재단기에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내재되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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