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공진희 기자
  • 승인 2016.03.15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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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 공진희 기자(진천주재)

진천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 기본서인 상산지(常山誌) 권상(卷上) 제언편에 장척제언 즉 덕문이 방죽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일명 동호(東湖)라고 하고 2만412평이며, 덕산면 산척리에 있다.’

덕문이 연꽃방죽에 관한 전설이 진천군지에 전해 내려온다.

‘조선시대 큰 부자가 이곳에 살았는데 그는 둔갑술을 쓰며 도둑질을 해서 재산을 모았다. 그는 또한 임금이 되기를 소원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주하러 온 스님에게 일꾼들을 시켜 두엄을 퍼주었고, 스님은 옷자락에 두엄을 공손히 받았다. 훗날 이 지역에서 안성을 거쳐 한양으로 가는 세금과 곡식이 중간에서 줄어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감사가 조사하니 그 부자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관가에서 즉시 사람을 풀어 그는 마침내 관군에 붙잡혀 죽고 그가 살던 집터는 물을 채워 방죽을 만들었다.’

중학생 시절, 그 동네 친구들의 도시락 반찬에는 연근이 빠지지 않았고, 주머니엔 주전부릿감으로 연밥이 가득했다. 덕문이 뜰로 모내기 일손돕기에 나섰다가 바라본 연꽃방죽에는 조각배 한 척이 떠 있었다.

요정의 바위라는 뜻으로 알려진 로렐라이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라인강을 항해하는 뱃사람들이 요정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도취되어 넋을 잃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배가 물결에 휩쓸려서 암초에 부딪쳐 난파한다는 줄거리이다. 이것이 하인리히 하이네, 아르헨도르프 등의 서정시로 이어지면서 거의 전설처럼 되고 말았다. 하이네의 시를 F·질허가 작곡한 가곡은 한국에서도 애창되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뛰어넘는 스토리메이킹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만진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자신의 독일 유학시절 로렐라이에 얽힌 경험을 한 일간지 칼럼에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곧 언덕에 올라와서 이곳저곳을 돌아보고는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로렐라이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언덕이었고, 관광객을 위한 식당과 기념품가게, 그리고 별스러워 보이지는 않은 조각상이 있는 것이 전부였다. (…) 우리는 대신 라인강과 그 주변의 언덕, 그 위에 있는 이름 모를 고성,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 등을 보고 하루의 소풍을 즐긴 것으로 만족하면서 돌아왔다.’

독일이 평범한 언덕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시로 다듬고 곡을 붙여 의미와 공간을 확장시키며 관광객을 끌어 모을 때, 우리는 전설과 역사적 기록,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했던 지역의 명품방죽을 헐어 논으로 만들었다.

방죽이 사라진 덕문이 뜰을 서성이는 나그네의 눈가에는 연꽃사이를 떠다니던 조각배가 어른거리는데, 귓가에는 로렐라이의 노랫소리가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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