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신저의 추일서정<秋日抒情>
모바일 메신저의 추일서정<秋日抒情>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3.1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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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어쩔 수 없이 오는 봄 앞에서 낙엽이 떠올려지는 현실이 황망하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전화의 알림음이 내 마음 속의 봄소식을 더디게 하는 이유인데,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의 첫 구절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가 무던했던 반사 신경을 자극한다.

최근 들어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말갈아 타기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휴대폰 알림음은 도대체 깊은 밤에도 예의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수가 이미 몇 해 전 전체 인구를 추월했고, 그 가운데 스마트폰이 85%를 넘어선 시대. 어쩌다 우리의 휴대전화는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움이 우려되는 물건이 되었는가.

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나타나 본능처럼 번지는 모바일 메신저의 엑소더스에는 심지어, 평소 성향이 구태여 좀 더 보안 능력이 출중한 쪽으로 말을 갈아 탈 필요가 있을까 의심스러운 사람의 경우도 꽤 있다. 이런 의심은 국가와 사회 안전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될 수 있는 테러에 대한 예방이라는 입법 취지와는 달리 은밀한 개인적 비밀이 많거나 부적절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19금적 상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모바일 메신저는 사회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SNS의 본래 기능과 개인정보의 보호본능이 서로 대치하면서 공존할 수 없는 상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처럼 새로운 둥지를 찾는 유랑이 ‘어떤 지역이나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일’이라는 의미의 엑소더스인지, 아니면 낙엽과도 같은 망명인지, 피난인지 도대체 구분이 쉽지 않다.

현대인에게 휴대전화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잠시라도 휴대전화가 없거나 심하면 배터리가 방전되는 일시적인 상황에도 불안감을 호소하는 증후군이 빈번할 만큼 열광적이며 지극한 중독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관련 기업들은 그런 세태를 틈타 재빠르게 휴대용 충전기를 만들면서 치열한 시장경쟁을 벌이고 있다.

페이스북을 만든 주커버그가 단숨에 세계적 부호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사실은 관련 산업의 파급효과가 얼마나 커나갈 수 있을 것인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아직까지는 한국 기업 삼성의 휴대폰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사용의 편리성이거나, 메신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입자 숫자 등의 경제적 산술 기초 대신 보안성 위주의 상품 선택 기준이 우선되는 유행은 두렵기만 하다. 별도의 광고 없이 보안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모바일 메신저의 흥행 성공을 만들어 가고 있는 현실은 그래서 더욱 기가 막힌다.

“그래? SNS 안 쓰면 그만이지!”라는 푸념은 무기력하다. 알파고의 위력에 휘청거리다 겨우 사람의 희망을 찾은 기묘한 반상의 대결도 심상치 않는데, 모바일 메신저의 대탈주가 겹쳐지는 기계의 공습은 결국 인간의 탓.

더딘 봄을 탓하며 뜬금없이 시를 읊는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중략) 허공에 띠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면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 추일서정)

사람의 시심을 아직은 따라 오지 못할 걸. 기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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