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가렵다
미치도록 가렵다
  • 이지수<청주 중앙초>
  • 승인 2016.03.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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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지수

도통 읽히지 않았다. ‘시간을 파는 상젼으로 유명한 김선영 작가의 신작이라는 입소문을 듣고 구입해놓고도, 몇 번이나 책장에서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가 반복되었다. 칼럼을 써야 할 날짜는 다가오는데 읽히지 않아 허둥지둥. 그러다 문득 주인공의 생각과 처한 상황이 내 이야기 같아 선뜻 책장을 넘기기 껄끄러웠음을 알았다.

솔직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 볼 용기가 안 난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냥 나는 난데 새삼스럽게 마음의 거울에 비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객관적으로 찬찬히 살펴보는 일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쑥스러움을 동반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무엇보다 주인공 수인과 나의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적어도 내게도 이 책에 관해 한 마디쯤은 해야 할 말이 생겼다. 올해는 삼양초에서 청주 중앙초로 발령받았고, 이사도 했다. 낯선 곳에서의 첫 걸음이 주인공 수인과 닮아있었다. 수인도 나와 같은 사서교사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초등학교 사서교사이고 수인은 중학교 사서교사라는 것뿐이다.

수인이 새로운 학교로 발령받아 온 첫 이야기부터가 내 이야기였다. 너무도 잘 알고 공감하는 이야기이기에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단순히 낯선 곳으로의 전보발령이 이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그동안 이 책을 못 읽어낸 이유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도서관은 곧 사서교사들의 일터이자 학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터가 된다. 도서관 업무의 연속성을 따진다면 이제부터 서가의 책들은 곧 사서교사들의 자녀가 된다. 말없이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과의 첫 대면은 서가 재정비, 장서점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소위 막노동이 우리의 첫인사다. 사람이 아닌 책과의 만남. 다른 직종과 다른 사서교사들만의 특이한 만남의 시작은 아닐까 싶다. 그다음이 도서관에 찾아오는 학생들과의 면대면 만남이다. 도서관에 오는 학생들의 모습은 다양한데 독서하고자 오는 아이부터 자투리 시간을 독서로 보내려는 아이, 위안을 받으러 오는 아이, 그냥 도서관이 잘 있나 점검하러 오는 아이들 등이다.

사람과의 만남은 이해와 배려에서 시작된다. 학생이라고 해서 교사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은 조심스럽고 기다림의 인내가 있어야 하며 듣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낯선 사서선생님과 학생들의 소통이 쌍방향이 되려면 그만큼 많은 시간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

내가 ‘미치도록 가렵다(자음과 모음)’에서 읽은 책 반절의 이야기도 여기까지다. 일진에 속해 오토바이 절도에 휘말려 억지로 수인의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도범과 입을 굳게 잠근 채 가방 속에 망치를 넣고 다니는 해머, 새처럼 생겨서 그냥 있는 그대로 ‘새’로 불리는 새. 그래서 앞으로 도서관에서 수인과 삼인방이 독서회로 만나 어떤 만남을 이어갈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상태다.

‘미치도록 가렵다’ 가렵다는 것은 ‘긁어야 시원해진다’를 다음 과정으로 등장시켜야 해소되는 문제다. 나의 과제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중앙초는 작년에 구도심에서 이곳 율량동으로 교사 이전을 했다. 난 아직도 서가 재정비와 장서점검 중으로 책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초 아이들과의 만남은 일주일 후에야 가능하다. 내게 가려운 것, 도서관 환경정비를 잘해서 도서관이 학교의 꽃으로써 즐거운 책읽기, 오면 즐거운 곳으로 만들기,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기, 사서선생님을 보러 오는 곳으로 만들기다.

앞으로 내가 읽어갈 남은 반절의 ‘미치도록 가렵다’의 수인은 삼인방과의 가려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가려운 곳은 긁어냈을까? 처음으로 책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오늘 밤 남은 반절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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