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의거와 4·13총선
3·15의거와 4·13총선
  • 김기원<편집위원>
  • 승인 2016.03.14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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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김기원<편집위원>

3·15의거가 일어난 지 어언 56년이 되었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선거 때 일이다.

장기집권을 획책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전국 각지에서 관권과 금권을 동원한 노골적인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이를 보다 못한 마산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협잡선거 물리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했다.

경찰이 쏜 최루탄과 총탄에 수많은 시민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다친 날이 바로 오늘이다.

4월 11일 실종되었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28일 만에 마산 중앙부두에서 떠오르자 마산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급기야 독재타도를 외치는 2차 시위로 번졌다.

3·15의거가 도화선이 되어 전국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 4·19혁명이 일어났고, 아무리 서슬 퍼런 독재정권이라 할지라도 국민이 화나면 축출되고 만다는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었다.

4·13 총선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바야흐로 선거시즌이다.

그동안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언론과 NGO들의 감시·견제활동도 강화되어 선거문화가 많이 성숙해졌다. 그러나 당선지상주의는 여전해 흑색선전과 향응제공 같은 불법·탈법선거운동은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찍히고 비밀 녹음기로 녹취되어 탈·불법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고, 당선되더라도 탈·불법이 입증되면 당선무효 되거나 중도퇴진 하도록 법망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 결코 쉽지 않다.

한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공천자의 윤곽이 드러나고 본선 대진표가 어느 정도 짜임에 따라 정당과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 불신이 깊고 국회의원들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낮아 기 유권자들의 관심은 아직도 냉랭하기만 하다.

선거가 끝나기만 하면 저런 국회의원을 왜 뽑았던 가 장탄식하거나, 심지어 찍은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다 할 정도로 마음이 상해 있으니 왜 아니 그러겠는가?

찍을 사람도 딱히 없고, 모두 그 나물에 그 나물이니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다.

참신하다는 사람들도 금배지만 달면 금세 달라지니 무관심층이 날로 늘어나고 있고, 누가 되든 늘 그 턱일 거라는 자괴감이 심화하였기 때문이다.

선거 때가 되면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겠노라 철석같이 약속해놓고는 당선만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온갖 특혜를 누리며 막말하고 갑질하고 정경유착에 검은돈까지 수수하는 지체 높은 나리들.

법을 만들면서 정작 자신들은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국익보다 당리당략을, 당론보다 사익을 먼저 탐하는 모리배들.

안타깝게도 이게 바로 그동안 국민에게 각인된 국회의원상이고, 국회의 모습이니 어찌하랴.

국가 안보와 경제가 위중한데도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집안 싸움만 하는 집권여당도, 표가 분산되면 여당에 어부지리를 준다며 싫다고 새집을 장만해 떠난 식구들에게 통합하고 연대하자고 난리법석을 떠는 야당도 모두 그렇고 그러하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법을 만들고 정부를 견제하는 국회는 있어야 하니 국회의원을 뽑기는 뽑아야지.

다 도찐개찐이어서 국가와 지역을 위해 올곧게 일할 만한 마땅한 후보가 없을 터이지만 그래도 후보들의 면면을 이모저모를 따져보고 그중에서 나름 싹수 있어 보이는 차선이라도 하나 골라야 하지 않겠는가?

3·15의거 날 4·13 총선과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각자 민주주의를 위해,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성찰해 보자.

국가현실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암울하고 위태하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어떻게 세운 나라던가, 힘을 합해 대한민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자.

저기 3·15의거 열사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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