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추위
봄추위
  • 김태봉 <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3.1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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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겨울 추위를 피해서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봄이 온 것을 뒤늦게 알고 깜짝 놀라 뛰쳐나온다는 경칩(驚蟄)이 지나고 나서도, 추위가 완전히 지나갔다고 마음을 놓는 것은 금물이다. 심심치 않게 꽃샘추위가 출몰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은 것이다. 꽃샘추위에 놀라 다시 겨울이 온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잔설(殘雪)에 여풍(餘風)일 뿐이다. 봄 같지 않을 뿐, 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송(宋)의 시인 진여의(陳與義)도 봄추위의 매운 맛을 제대로 맛봤지만, 봄이 왔음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봄추위(春寒)

二月巴陵日日風(이월파릉일일풍) : 이월의 파릉 땅 날마다 바람 불어

春寒未了怯園公(춘한미료겁원공) : 봄추위 가시지 않아 이 몸 떨게 하네

海棠不惜臙脂色(해당불석연지색) : 해당화는 연지꽃 지는 것 아깝지 않은지

獨立濛濛細雨中(독립몽몽세우중) : 자욱한 가랑비 속에 홀로 서 있네



파릉(巴陵)은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악양(岳陽)이다. 이 곳은 장강(長江) 유역으로 겨울에 바람이 심한 곳으로 유명하다. 음력으로 이월이면 이미 봄인데도 날마다 부는 바람에는 한기가 여전히 실려 있다. 꽃샘추위로 불리는 봄추위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작은 동산에 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는 시인을 겁먹게 하기에 충분하다. 새색시 볼에 찍은 연지(?脂)처럼 붉은 꽃을 자랑하는 해당화는 봄이 도래한 것을 알고는 특유의 붉은 꽃을 활짝 피웠다가 난데없이 꽃샘추위 찬바람을 만났으니, 황망하기도 하련만 의연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자욱하게 내리는 봄비 앞에서는 속절없이 떨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봄은 왔건만 날마다 찬바람이 불고 거기다가 비까지 자욱하게 내렸으니 시인이 겨울이 다시 올까 겁을 집어 먹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다만 봄의 따스함을 믿고 꽃을 피웠다가, 꽃샘추위 찬바람에 속절없이 지고 만 해당화가 안타까울 뿐.

겨울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사람들은 봄이 온 것에 자칫 성급해지기 쉽다. 그래서 두꺼운 외투를 갑자기 벗고 외출에 나섰다가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성급한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꽃도 마찬가지이다. 봄이 온 줄 알고 꽃을 활짝 피웠다가 꽃샘추위와 찬비에 봄을 채 만끽하지도 못 한 채 지고 마는 것이다. 봄이 아무리 반가운 존재라 해도 성급하다면 봄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도 있다. 초봄은 아직 겨울인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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