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
  • 이수안 <수필가>
  • 승인 2016.03.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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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

딸아이가 설성공원 옆에 카페를 개업할 때의 일이다. 그때 만난 녀석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늘 의기소침한 몸짓으로 구석 같은 데서 엎드려 있고는 했다. 꺼칠한 털에 앙상하기까지 한 녀석은 스스로 생존할 최소한의 힘조차 없어 보였다.

보다 못한 딸아이가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일주일쯤 전에 문제가 생겼다. 딸이 운영하는 카페 옆 식당 사장님이 녀석을 잡기 위해 쥐약을 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길가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소머리를 삶는데 녀석이 그 부뚜막에 올라간 모양이다.

많은 이야기 끝에 딸은 녀석에게 주던 사료를 중단하고, 대신 사장님은 쥐약을 놓지 않기로 합의했다.

최악의 상황은 막았지만, 딸은 많이 힘들어했다. 아직 녀석은 다른 길고양이들의 틈바구니에서 도움 없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나약했기 때문이다.

그 뒤 딸은 수시로 녀석 이야기를 했다. 먹이를 달라고 쳐다보며 울었다, 배가 고픈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등등.

그러구러 대엿새가 지나 봄비가 보슬보슬 내린 날 밤이었다. 퇴근하는 딸이 훌쩍이며 들어왔다. 이유인즉, 녀석이 카페 앞유리 벽에 기대 웅크리고 있는데, 저리 가라고 소리소리 질러도 꼼짝 않더라는 것이다. 제대로 못 먹어서 배가 고플 녀석을 뒤로하고 오는데 다잡았던 마음이 무너진 모양이었다.

설성공원 주위에는 예쁜 길고양이들도 더러 돌아다닌다. 그런데 딸은 삐쩍 말라 볼품없는 이 녀석에게 유독 마음을 준다. 녀석도 그렇다. 추녀가 넓은 곳이나 공원 야외무대 아래 등, 비를 피할 곳은 많다. 그런데도 왜 굳이 딸의 카페로 와서 비까지 맞으며 웅크리고 있느냐 말이다.

여기서 나는 문득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여우의 입을 통해 왕자의 장미에 대해 한 말을 생각한다.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 허비한 시간 때문에 네 장미꽃이 중요하게 된 거야”

딸은 녀석과 삼년간이나 먹이를 주고받아 먹으며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세상에는 많은 장미가 있지만 자신이 매일 물을 주며 가꾼 그 장미가 어린 왕자에게는 가장 중요했던 것처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딸에게는 특별했으나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던 녀석의 존재. 그러나 녀석이 딸의 아픔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나에게도 특별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 끝에 오늘 밤 딸의 퇴근길에 녀석을 과수원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넓은 과수원은 녀석의 새로운 영역이 되어 줄 것이고, 들쥐 등 먹이사슬도 잘 형성되어 있다. 마음 붙이고 살면 녀석에게는 완벽한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관계를 맺는 것은 길을 들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최근까지 딸이 길들이던 녀석을 이제는 내가 길들인다는 뜻이겠다. 아직 바통을 이어받지도 않았는데 벌써 걱정이 앞선다. 녀석이 나를 잘 따라 줄까?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는 않을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네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야.”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을 언급한 대목을 생각하면 무거운 부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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