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음악을 타고
추억은 음악을 타고
  • 김희숙<수필가·원봉초 병설유치원 교사>
  • 승인 2016.03.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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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수필가·원봉초 병설유치원 교사>

음악은 내게 휴식을 준다. “선생님 시간 있으면 우리랑 숲 속 음악회에 가요~ .”

몇 달 전에 A에게서 톡이 왔다. 말을 놓으라고 해도 그녀는 말을 놓지 않는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내게 꼬박꼬박 존대를 한다. 나는 말 놓으라고 일 년 동안 말하다 요즘엔 그냥 그녀가 부르는 대로 대답하고 따라 준다. 그것이 그녀에게 편안함을 준다면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산골에 느긋하게 펼쳐진 음악회. 정신지체로 몸이 부자연스러운 남자 연주자가 피아노를 힘겹게 두드렸다. 그의 노력이 소름끼치도록 아프게 다가왔다. 뉴에이지풍의 피아노 선율이 아리게 스며들었다. 여자 친구와 이별 후 작곡했다는 곡(moonlight)을 들으며, 아슴하게 물들어 가던 그 바닷가의 저녁노을을 떠올렸다.

편안하면서도 아픔이 뚝뚝 떨어지는 선율, 소리치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지는 고요한 아픔이었다. 폭풍우 뒤에 찾아오는 적막 같은, 아픔 뒤에 오는 편안함이 있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음악에 귀를 열고 나를 맡겼다.

그녀가 조용히 내 손 위에 그녀의 손을 포갠다. 아무 말 없이도 편하게 생각을 교류하고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그녀가 더없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내게 휴식을 주는 음악이 좋다.

음악은 내게 만남을 준다. 얼마 전 음악회를 예약하며 B의 시간을 예약했다.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알고 싶은 사람이다. 늘 말을 아끼는 그녀. 나이는 비록 어려도 나보다 몇 배 넉넉한 마음 방을 소유한 그녀다.

그녀와는 안식년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조용하면서 알곡같이 꽉 찬 그녀와 난 문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나왔지만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다. 그녀에게 전활 했다. 혹시 내가 늦으면 먼저 들어가라고. 그녀는 한사코 기다린단다. 먼저 들어가 있으면 어느 틈엔가 내가 옆 좌석에 떡 하니 앉아 있을 테니, 걱정 말고 먼저 들어가라 했다. 시간에 간들간들 도착했으나 주차 공간이 없었다. 공연장 주변을 몇 바퀴 돌고서야 겨우 차 놓을 자리를 발견했다.

두 번째 곡의 연주가 끝나고 잠시 사회자의 진행이 있는 틈을 타 좌석에 앉았다. 그녀가 손을 잡아준다. 따듯하다.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낯익은 선율로 귓전을 맴돈다. 인연을 부르는 초대가수의 터질 듯한 목소리, 가슴을 찌르는 듯한 테너의 오페라하일라이트. 음악회를 다녀온 날은 가슴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다. 앵콜 공연이 끝나고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옆에 앉아 있는 그녀가 음악에 휩싸여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녀와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해주는 음악이 고맙다.

비록 음악을 잘 모르지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멋진 그녀들이 있어서 좋다. 그렇게 음악은 내 삶에 휴식과 만남을 주고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갖게 해주는 고마운 매개체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공연장을 나서는데 노을이 피어나고 있다. 문득 그녀들의 얼굴이 스친다. 노을지던 바닷가 붉은 추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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