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이야기
컴퓨터 이야기
  • 최준<시인>
  • 승인 2016.03.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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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최준

인간의 두뇌는 영원한 신비라고 한다. 이 신비로부터 태어난 결정체가 바로 컴퓨터가 아닌가 한다. 인간의 두뇌가 만들어 내었으나 컴퓨터는 이제 인간에게 도전하는 지상의 유일한 존재다. 이 존재는 감정이나 연민이 없기에 인간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라 말하지만 영혼이 없는 이 물체는 인간보다 철저하게 냉철하고 정직하다. 태어난 지 한 세대 만에 지상의 화두가 되고 있는 컴퓨터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었던 문명의 중심부에 버젓이 자리 잡았다. 소통과 산업에 이르기까지 컴퓨터는 인력을 대체하는 아주 훌륭한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개인과 집단과 국가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영역이 없다. 수단의 단계에서 필수불가결인 단계로 바뀐 컴퓨터는 필요로부터 공존의 위치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엊그제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이 있었다. 서양장기인 체스에서는 이미 인간을 넘어선 컴퓨터였지만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던 바둑에 컴퓨터가 도전한 거였다. 세계 바둑의 최고수라고 인정받는 이세돌 프로와 컴퓨터의 대결은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다. 다섯 번의 대국으로 기획된 인간과 컴퓨터의 바둑 첫 대국에서 예상을 깨고 이세돌 프로가 졌다. 이건 바둑계의 사건이라기보다 컴퓨터가 인간에게 얼마나 대단한 존재가 되었는가를 증명하는 근거이므로 충격적이다. 인간은 아무리 뛰어나도 어디까지나 개인이지만 컴퓨터는 집합체이다. 컴퓨터에 입력된 데이터는 과거와 현재를 망라한다. 아주 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를 소급한다. 이제 인간과 컴퓨터는 인식이나 인지의 영역을 떠나 시간과 공간과 의식을 공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간은 컴퓨터를 만든, 이른바 창조주에 해당하지만 컴퓨터에 의존해야 하는 가련한 처지로 전락했다.

기실 인간은 지능 이외에는 별 볼일 없는 존재다. 그러니 지능을 최대한으로 사용하고 이용해야 한다는 역설에 이른다. 이 허황한 의무감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식을 불러오고 집단의 힘은 사회를 형성하고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불러왔다. 극단의 대립인 전쟁조차도 현대의 인간은 몸이 아닌 컴퓨터의 키보드 게임이 되었다고 한다. 감정과 감성이 사라지고 이해관계만 남았다.

개인의 삶은 보잘 것 없어졌고 소통은 편리를 가장한 간접관계로 지속된다. 만남의 양식도 바뀌었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언어가 아닌 전류가 흐른다. 이런 게 다 우리 인간이 만든 지상의 질서체계다.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동시성으로 통합되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과거보다 더 행복해지고 편리해졌다고 말해야 할지 의문이 남는다.

모든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그러했듯이 컴퓨터도 분명히 선과 악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다이너마이트가 그랬고 핵이 그랬다. 하지만 컴퓨터는 다이너마이트와 핵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이미 컴퓨터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돌려받고 있는 현실 앞에서 인간은 그림자만 남기고 사라져가고 있다.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이를 옹호하기에는 그 영향력이 너무나 크다. 공상과학영화가 그려내던 컴퓨터에 의한 인간 지배가 사실상 현재가 되었다.

엉뚱한 얘기지만 올 봄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 컴퓨터가 후보로 나서면 어떨까 하는 아주 비현실적인 생각을 해 보았다. 과거의 정치사에서 좋은 점만을 데이터에 내장한 그런 컴퓨터 말이다. 비난받을 만한 상상을 해 본 이유는 술잔을 기울이며 안주로 삼는 정치 잡담들보다 컴퓨터가 외려 더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을 수도 있을 법했기 때문이다. 작금의 정치판에서 컴퓨터보다 더 인간적이고 양심적이고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치가가 누구인가. 컴퓨터가 가지지 못한 감성과 연민을 그들 정치가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가. 컴퓨터는 아주 가깝고 그들은 아득히 멀리 있다. 아니, 그들은 국민의 행복과 안녕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안위에 대한 득실만 내장되어 있는 구식 컴퓨터는 아닌가. 아무리 고개를 갸웃거려보아도 그렇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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