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것에서 세상을 보다
소소한 것에서 세상을 보다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03.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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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최명임<수필가>

몰락한 가문을 지키는 미망인의 모습이다.

한때는 처첩을 거느리고 목울대를 치켜세우던 지아비의 그늘에서 그녀들도 화려한 봄날이 있었다. 새하얀 입성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우아하게 걷는 모습에 기품이 서렸다. 흑발 미녀 오골계도 도도함이 만만찮다. 어느 귀족의 후손인가, 여전히 고고함을 풍긴다.

그럼에도 은연중에 속내를 드러낸다. 일삼아 땅을 해작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공허한 애가를 부르고 있다. 듣고 있으면 정절녀의 숨겨진 가슴처럼 애잔하고도 청승스럽다. 내 눈에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로의 열망과 외짝의 부조화로 보인다.

그녀들을 거느리던 수컷은 오로지 식솔들과 제 영역을 지키기에 급급해 안목을 잃어버린 무뢰한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를 짓고 수탉과 함께 기십 마리의 중병아리를 사 넣었다. 병들어 죽기도 하고 산 밑이라 짐승에게 변을 당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모이면 거나하게 한 상 차림에 올라 그 수가 줄어들었다.

어느 날 부턴가 수컷이 폭군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손에 조작되는 운명이라 불안하고 늘 조마조마했을 게다. 의미심장한 눈으로 들이닥칠 때마다 제 식솔이 붙들려가는 변고에 원망이 쌓였을 것이다. 평화를 가장한 강자의 면상에 환멸을 느꼈을까, 아니면 공포였을까. 제 우리 옆을 지나기만 해도 펄쩍 뛰는 것은 고사하고,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조차 꼿꼿이 볏을 세우고 무차별 공격을 마다하지 않았다. 누렁이와는 무탈하게 지내더니 사람만 보면 섬뜩한 모양새로 덤벼드는 통에 식겁했다.

와중에도 처첩들은 지당하다는 듯이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지아비의 그늘에서 안주하는 여인네의 모습이다. 그녀들에게 수컷의 위상은 대단했다. 목울대를 치켜세우고 위엄을 부리며 앞장을 서면 뒤에서 자분자분 따라가는 그녀들은 천상 사람의 양반님네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한갓 미물임에도 제 도리를 아는 것 같아서 수컷의 횡포가 밉지 않았다. 영물이라 자처하는 사람도 제 구실을 못함이 허다하니 말이다.

이 조화 속을 보면서 생각했다. ‘누가 닭 대ㅇㅇ라고 하대했을까.’

가족을 위한 살신성인은 가상하지만 이기적 인간에게는 가당찮은 일,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서슬 퍼렇게 덤비다가 결국 얼굴과 손등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피를 보고도 패악을 떨다가 그만 휘두른 막대기에 기절을 해버렸다. 마침내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힘 있는 자의 눈에는 단지 기고만장한 행우지, 고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지나치면 된서리를 맞고 모나면 정을 맞는 것이 세상 이치다. 여전히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 제 앞가림만 하는 사람,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사람 이야기로 TV 속이 시끌벅적하다.

뭇 입으로부터 몰매를 맞고 삿대질을 당하는 이 난해한 ‘판’을 우리는 늘 징하게 지켜보고 있다. 좋은 소식이 둘이면 귀를 막고 싶은 소식은 여덟이니 듣기가 거북하다. 이치대로만 살기에 세상은 버겁고 어려운 것일까. 하여 헤매는 사람들로 사회가 분분하다.

때를 알고 자리를 알고 분수를 알면 오던 화도 비켜간다고 했다. 그것을 모르고 날뛴 수컷이나 사람더러 닭 대ㅇㅇ라 일렀을까. 제 분수를 알고 자족하면 거기가 어디든 평화가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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