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체온이 있다?
식물도 체온이 있다?
  • 우래제 교사 <청주원봉중학교>
  • 승인 2016.03.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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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 우래제 교사

꽃을 기다리며 보낸 긴 겨울의 끝자락. 꽃 지기를 제일 먼저 유혹하는 것이 앉은 부채이다. 몇 해를 만나 보았는데 작년에만 보지 못한데다가 자생지가 훼손되었다는 뉴스를 보았기에 지난달 서둘러 앉은 부채를 만나러 떠났었다.

앉은 부채는 오목한 반타원형의 꽃 덮개 속에 여러 개의 암·수술이 육질의 꽃대에 모여 마치 도깨비 방망이 같은 모습으로 피는데, 이 모습이 마치 부처가 앉아 수행하는 것 같다고 해서 앉은부처라고 부르다 앉은 부채가 되었다고 한다. 또 넓은 잎이 큰 부채만 해서 사람이 앉을 만하다고 해서 앉은 부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앉은 부채는 너무 일찍 꽃을 피워 벌과 나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썩은 고기 냄새로 개미나 거미 같은 곤충을 유인하여 수분을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스컹크 캐비지라고도 한다. 그래서 꽃말도 ‘그냥 내버려 두세요.’다.

앉은 부채는 천남성과로 독성이 있어 잘 못 먹으면 심한 설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미련하다고 하는 곰은 이를 잘 이용한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 이 앉은 부채를 뜯어 먹고 겨우내 굳었던 장을 청소한다고 하니 곰이 얼마나 현명한가? 그래서 앉은 부채를 곰풀이라고도 한다.

앉은 부채는 오전에 잠깐 빛을 비추는 나무들 사이의 음지에 살면서도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꽃을 피운다. 때로는 눈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워 꽃 지기들을 기쁘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앉은 부채는 어떻게 꽁꽁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와 꽃을 피웠을까?

학생들과 함께 꽃 덮개 안의 온도와 지면의 온도를 측정해본 결과 꽃 덮개의 온도가 지표의 온도보다 확실하게 높았다. 이는 앉은 부채가 스스로 열을 발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 식물도 스스로 열을 내는 것이다. 동물의 체온과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스스로 열을 내고 언 땅을 녹여 꽃을 피우는 것이다. 오목한 꽃 덮개는 열을 최대한 보존하여 덮개 내부의 온도가 외부보다 훨씬 더 높다. 어렵게 눈 사이를 뚫고 나온 육질로 된 꽃 덮개는 굶주린 들쥐나 고라니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서둘러 꽃을 피우는 이유는?그것은 키가 큰 나무들의 잎이 활짝 피기 전에 꽃을 피워 자손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키가 작아 다른 나무들이 무성한 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최대한 받기 위해 넓은 잎이 필요했고, 그 잎으로 다음해 피울 꽃을 위해 영양을 만들어 저장한다. 현재의 꽃은 지난해 여름 쌓아놓은 영양을 소비하며 열을 내어 언 땅을 녹이고 자손을 만들기 위해 꽃을 피우는 힘겨운 앉은 부채의 삶인 것이다.

흔치 않은 앉은 부채가 가까운 곳에 있고 가끔씩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지금쯤 여기저기 눈을 녹이며 올라오는 새싹이 보여야 하는데 몇 개체만 보인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자생지 입구에 ‘조용히 명상에 잠긴 앉은부채 자생지’라고 써놓은 입석이 있다. 누가 명상을 깨워 부처를 쫓아 버렸을까? 발걸음만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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