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과 영화 `귀향' 그리고 역사
일본 대지진과 영화 `귀향' 그리고 역사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3.0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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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5년 전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일본 열도 동북부를 규모 9.0의 대지진이 강타한 2011년 3월 11일. 쓰나미의 높이가 10m를 훌쩍 넘긴 대재앙의 끝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당시의 피해상황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은 5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상처의 흔적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겨우 방파제만 복구된 처량한 모습의 포구엔 여러 척의 고기잡이배가 정박해 있는데, 방사능의 오염 정도와 그 폐해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고기잡이가 과연 사람을 위한 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경제 대국 일본의 모습이라는 점이 경악스러운데 희생된 학생들과 시민들의 처절한 통곡은 가만히 있으라는 선생님의 말씀과 상사의 어이없는 지시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절규는 2년 전 우리나라의 세월호 침몰과 너무도 닮았다.

그리고 그런 닮은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망각에 의존하려는 역사의식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 `귀향 鬼鄕'이 3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영화의 관객을 견인하는 주요 계층이 20대 여성이라는 점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쓰라린 상처가 유독 여성들에게 깊었던 데다 그 아픔이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 이제 시간이 별로 길게 남아 있지 않다는 안타까움의 집단적 표현이 아닐까 한다.

영화 `귀향'은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오는 귀향(歸鄕)이 아닌 귀향(鬼鄕)으로 표시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살아서는 돌아올 수 없는 길. 그 처절한 비극의 굴레에서 벗어나 넋이라도 돌아오기를 갈망하는 한(恨)이 아픈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 결코 끝낼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있음이 이 영화의 진혼곡이 되고 있다.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의 역사 왜곡을 통한 도발의 시도는 고대사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집요하다.

‘가만히 있으라’, ‘방사능의 위험은 없다’는 식의 위험한 진실 호도와 더불어 경제 대국 일본의 위세를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더딘 복구 작업. 그리고 선생님과 회사의 지시에 따랐다가 영영 불귀의 객이 되고만 일본 국민에 대한 외면이 이럴 지경인데, 다른 나라 사정이 안중에 있겠는가. 이 땅을 침략, 유린하고 온갖 착취를 서슴지 않았던 한국을 비롯한 이웃나라에 대한 배려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과를 일본에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글러먹은 일이니 참으로 서럽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역사는 승자에 의해 만들어진 기록이라는 불편한 해석도 있다.

혼과 넋이 되어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나비가 되어서라도 기어코 돌아오고야 말 슬픈 영혼의 한 맺힌 통곡에 어찌 승자와 패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거기 들풀처럼 짓밟히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의 피눈물과 처참한 주검이 관객을 고통스럽게 하는 영화 `귀향 鬼鄕'의 망령들이 아직 이 강산 곳곳의 허공을 맴돌고 있는, 그리고 이런 분노를 서둘러 덮으려는 나라 안의 사정은 생각할수록 딱하다.

그러니 분노와 혐오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을 터이고, 그 와중에 숨기고 감추려는 모든 역사 왜곡에 길들게 하는 사육의 시대.

두 눈 부릅뜨고 살펴봐야 하고 주먹을 불끈 쥔 채 살아 있어야 한다. 민초의 모든 순간순간이 역사이다. 진실을 외면하면 또 다른 대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귀향 鬼鄕'의 한 많은 넋들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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