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아니라 꽃
상처가 아니라 꽃
  • 안상숲<숲해설가>
  • 승인 2016.03.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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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안상숲<숲해설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불이 흔한 시절이었지요. 다른 화기가 없었던 탓에 여름에도 불을 때서 밥을 해야 했고 겨울에는 방 가운데 화롯불에 둘러앉아 온기를 나눴어요. 다른 건 몰라도 불구경을 좋아했던 저는 저녁밥 하는 엄마를 도와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곤 했어요. 이글거리는 불꽃. 불꽃은 붉고 푸르고 노랗고 하얀 여러 가지 빛깔의 꽃잎을 피워냈어요. 동그란 꽃잎이었다가 길쭉해졌다가 흐르다가 솟았다가 자꾸 모습을 바꾸어 피는 것도 예뻤어요. 깻단을 태우면 깨향기를 피우고 솔가지를 태우면 솔향을 피워 불꽃의 향기는 때마다 달랐어요.

제 손등 위에는 마치 삼엽충의 화석 같은 흉터가 하나 있는데요. 그게 바로 그때에 생긴 상처랍니다. 부지깽이로 불꽃을 건들다가 불티가 날아와 손등을 데었지요. 금방 말랑거리는 물집이 동그랗게 돋아났지요. 그 말랑거리는 느낌이 좋아서 애들이랑 놀다가도 누르고 나뭇잎 뾰족한 거치로 터지지 않을 만큼씩 찔러보기도 했어요. 아물 사이도 없이 딱지를 떼는 바람에 엄마에게 혼나기도 여러 번, 그러다 보니 동전만 한 꽃 도장이 찍혀있는 거예요. 언뜻 보면 삼엽충 화석 같고 또 어찌 보면 꽃 도장인 이 흉터를 저는 많이 아껴요.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미소가 번지지요. 불 냄새 따뜻했던 그때, 이글거리며 피어오르는 불꽃, 아늑하고 아득한 온기, 어쩌면 제 생의 가장 따뜻한 기억일지도 몰라요. 이 흉터가 아니라면 그 시절은 제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손등 위에 핀 상처, 흉터가 아니에요. 꽃이랍니다.

숲에도 상처를 꽃으로 피워낸 모습들을 볼 수 있어요. 나뭇가지에는 곤충들이 살다간 빈집이 여전히 퇴락한 채 달렸어요. 그 집들을 보면 웃음이 나지요. 곤충들의 건축술, 그 다양하고 아름다운 집에 살던 곤충들이 그리워서지요.

곤충은 스스로 자기 집을 짓기도 하지만 곤충이 특정한 나무에 알을 낳으면 나무가 그 곤충의 집을 지어주는 때도 있지요. 사실 자극을 받은 나무가 자기를 방어하고자 특정 호르몬을 분비하거나 조직세포의 이상 분열로 곤충의 알을 가두는 건데요. 어쨌거나 곤충은 그렇게 해서 부풀어 오른 식물의 조직 속을 제 집이라 여기고 편하고 안전하게 부화할 때까지 그곳에서 잘 지낸답니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나무의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큰답니다. 그걸 벌레집, 충영이라고 하는데요. 그 집 모양이 저마다 아주 다양하고 특별해요.

나무 중에는 단연 참나무에 기대어 사는 벌레들이 많아요. 벌레뿐만 아니라 사람도 동물들도 참나무 덕을 보는 생물들이 많지요. 그래서 참,나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거예요. 참나무에는 혹벌류의 벌레집이 꽃처럼 피어나지요. 장미꽃 모양의 로제트형 벌레집은 처음에는 초록이었다가 가을이면 붉게 단풍이 들기도 해요. 가을이 되어 나뭇잎들 모두 떨어져도 꽃 같은 충영은 겨울나무 빈 가지에 오래도록 달려있어요. 참나무한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참나무가 피워낸 꽃보다 훨씬 더 예뻐요.

벌레가 나무나 풀에 알을 낳는 일은 사실 식물에는 고통스러운 상처입니다. 벌레의 침입이 심한 해에는 견디지 못하고 고사하기도 한다네요. 그럼에도 그 상처를 꽃으로 피워내는 나무와 풀들을 보면 아무렇게나 함부로 살지 않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저절로 생깁니다.

봄바람이 숲을 깨우고 있어요. 우리 중 누가 상처를 꽃처럼 피워낼 수 있을까요. 식물이 수억 년을 거쳐 곤충들과 함께 삶을 사르며 피워낸 꽃. 상처를 꽃으로 피워내는 그들 삶의 방식. 그 무늬들이 모이고 얽혀서 이루어낸 곳이 숲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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