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고 싶다니
아기를 낳고 싶다니
  • 이형석<청주시 서원구 건축과 주무관>
  • 승인 2016.03.0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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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이형석<청주시 서원구 건축과 주무관>

작년 모 케이블TV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 재미있는 밴드 하나가 출연했었다. 이름하여 ‘중식이밴드’, 그들의 노래제목은 ‘아기를 낳고 싶다니’였다. 가사 일부는 이렇다.

“아기를 낳고 싶다니 그 무슨 말이 그러니 (…) 난 재주 없고 재수도 없어 집안도 가난하지 (…) 나는 고졸이고 너는 지방대야 계산을 쫌 해봐.(...) 네 개도 못 키우면서(...)누굴 키우냐(...)”

보컬 중식의 일상을 노래한 가사라는데 건설현장 인부였던 그는 불안한 직장인의 대표이자, 미래 또한 마찬가지 현실의 소유자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여자친구의 간절한 소망인 결혼과 아기를 낳고 싶다는 희망을 들어줄 수 없어 이렇게 반문한다. ‘아기를 갖고 싶다니...’ 오 이런! 그는 일당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형편상 여자친구의 희망에 맞장구칠 수 없어 결국 헤어졌다고 했다.

구구절절이 이해가 가는 가사였다. 그가 내지르는 소리 하나하나에 배인 깊은 절망과 직설적인 가사가 절대 공감과 시원함, 그리고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서글프기까지 했다.

같이 건설현장을 뛰는 선배들이 자식 부양을 위해 밤낮 없이 몸을 혹사해야 하고, 그래도 번듯하게 자식에게 무엇 하나 제대로 해 줄 수 없는 현실을 보면서 중식은 반문한다. ‘오, 아기를 낳고 싶다니, 그냥 우리 둘이 잘 살아보면 안 될까?’

필자는 지난해 10월 신규임용을 받은 나이 37살의 늦깎이 공무원이다. 9년이나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을 택한 이유 역시 육아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토록 원하던 주말 부부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육아가 쉽지 않다. 5살 딸아이 밑으로 동생 하나를 보고 싶어도 현실이 이리 동분서주인데, 둘째를 출산할 경우 우리 부부가 잘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마흔을 바라보면서도 출산을 미루고 있다.

얼마 전 퇴근 후 아내에게 물었다. “사무실에서 미션을 줬는데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까?’에 의견을 묻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아내 대답은 “당신만 잘하면 돼”였다.

내 딴에 정말 최소한의 일과 관련된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육아와 가사에 전념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아내에겐 그런 나의 모습이 성에 차지 않는가 보다. 그리고 그 말을 이렇게 해석해 본다. ‘출산율을 높이는데 엄마들이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문제는 아빠와 나머지들이야.’ 아빠는 가사일과 육아에 더 열심히 하면 된다. 문제는 ‘나머지들’이다. 비싼 집값, 막강한 사교육 시장, 야근을 포장하는 직장문화, 더불어 육아를 하찮은 일로 보는 잘못된 시각까지 아이 하나 더 낳는데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이런 사회에서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소위 결혼 적령기의 중식이가 거침없이 질러대는 노래를 들으면 아직 둘째 출산에 미온적인 우리 부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만 같아 나로서는 목 탈 때 마신 청량음료처럼 시원하기까지 했다.

나머지들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5살 딸의 동생을 위해 오늘도 난 세탁기 행굼+탈수를 한번 더 해 놓고 청소기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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