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이의 눈빛이어라
사랑에 빠진 이의 눈빛이어라
  • 박숙희<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6.03.06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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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박숙희

중국에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직지심체요절』이 있다고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더 자세히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를 가진 것 없이 줄 수 있는 삶으로 반추하려는 「직지」상권 열두 번째 이야기는 4조 도신 대사(三祖 道信 大師)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를(1998년) 참조했음을 밝힌다.

4조 도신 대사(四祖 道信 大師)가 제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제자가 5조 홍인 대사가 될 재송도자이다.

소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별명이 재송도자(栽松道者)가 되었는데 소나무를 심은 것은 4조 스님을 만난 뒤에 심게 되었다.

4조의 법을 받으려고 와서 서로 말을 거래할 때 재송도자는 이미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다.

그런데 4조의 법을 받기에는 나이가 80이 되어 너무 늙은 것이다.

법을 전해 준 4조보다 먼저 세상을 버릴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법을 전해준 의미가 없게 되므로 4조 도신 대사가 재송도자에게 몸을 바꾸어서 오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야 맞다. 같이 늙어서 내일 모래 죽을 사람들이 뭐하겠는가?

재송도자가 소나무를 심고 돌아가셨다.

나중에 다시 몸을 바꾸어서 오면 서로 모르니까(모를 리가 없지만) “네가 누구냐”고 하니까 “제가 갈 때 여기에 소나무를 심고 간 사람입니다”하면서 재송도자가 이렇게 시를 읊었다.

성긋성긋한 백발이 청산에 내려와서/ 팔십년을 오면서 옛날 얼굴을 바꾸었다.

사람은 문득 소년이 되고 소나무는 저절로 늙었으니/ 비로소 이로부터 인간에 떨어짐을 알겠더라.

과연 재송도자가 소나무를 심게 되는 깊은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한 번의 발걸음은 지워질 발자국을 남기지만 계속되면 길이 되고 한 번의 비는 지나가는 소나기이지만 계속되면 계절이 된다고 한다.

이는 누구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긴 여운을 남기는 영화든 책이든 우리 삶에서 만날 때가 있다는 것이겠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줄거리가 큰 감명을 주었다.

목사인 아버지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 노먼은 아버지 뜻에 부합하는 교수 생활을 하게 되지만 둘째 아들 폴은 지방 신문기자로 일하며 방탕한 삶을 살게 된다.

결국 폴은 도박 빚을 갚지 못해 길에서 폭행을 당해 죽는다. 아들을 잃은 목사 아버지는 일요일 예배시간에 둘째 아들을 애도하며 정제된 언어로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온전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즉 사랑은 지적 영역인 이해의 범주를 초월한다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보여 준다는 것이다.

4조 도선 대사가 스승보다 나이 많은 그의 제자 5조 홍인 대사에게 ‘몸을 바꾸어서 오라고 하신 것’은 영화<흐르는 강물처럼>처럼 존재의 바탕으로부터 나오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가 동의할 수 없어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과 같지 않은가.

몸을 바꾸어서 오면 서로 몰라 “네가 누구냐”고 하니까? “제가 갈 때 여기에 소나무를 심고 간 사람입니다”

이는 깊이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슴 심연에서 항상 흐르고 있는 것. 이것이 마치 ‘사랑에 빠진 이의 눈빛이어라’는 것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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