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된 딸에게
대학생이 된 딸에게
  • 정규호 <문화기획자 ·칼럼리스트>
  • 승인 2016.03.0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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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사랑하는 막내딸아! 봄보다 먼저 온 3월의 맑게 빛나는 싱싱한 하늘이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네 모습을 닮은 것 같구나.

네가 세상에 태어나 어미와 아비는 물론 주변 모든 사람들을 환하게 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학생이 되다니….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다.

대학, 그것도 학교 이름에 따라 서열이 갈리는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맹목적인 명분에 휩싸여 학교를 오고 가던 일의 반복이 어언 12년.

그 짧지 않은 시간을 홀로 싸우며 고통과 번민을, 그리고 순간순간 까닭 없이 닥쳐오는 절망의 유혹을 떨치는 일이 얼마나 수고로웠는지는 부모인 나 역시 제대로 알 수는 없는 일이겠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세상의 모든 딸들아.

꽃샘추위 없이 찾아오는 푸른 봄을 아비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마침 윤년이 되어 하루를 덤으로 살게 되는 2월 29일이 네 푸르른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날임은 여러 가지로 공교롭다. 날카로운 삭풍과 더불어 봄을 저항하듯 퍼붓는 눈보라와 그 흔적들로 얼룩져 남아 있는 곳곳의 빙판길은 결코 쉽지 않을 너의 대학생활을 예고하는 듯하다.

극심한 청년실업으로 학사모를 쓴 대졸 실업자 숫자가 334만명이 이르고 비경제활동 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대졸자이며,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최근 10년 사이 두 배로 증가하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떠올리면 대학생이 되었다는 일이 마냥 축하할 일은 아닌 듯해서 더 서럽다.

오로지 대입 수험생이라는 중압감으로 일찌감치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전전했던 고등학교 3년을 뒤로하고 다시 팔려가는 소처럼 서울의 기숙사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 막내딸의 모습은 여전히 애잔하다.

사랑하는 막내딸아!

어디 그뿐이랴. ‘문송’이라, 문과대학생이어서 죄송하다는 자학이 나올 정도로 존재에 대한 비하가 나타나는 국문과를 너 스스로 택한 뒤 앞날을 걱정하는 네 모습을 대할 때마다 애처로움의 연속이다.

딸아!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네가 선택한 대학과 학과는 아비가 두 차례나 실패했던 곳이어서 그것만으로도 아비 가슴의 오래된 응어리가 풀리는 기쁨으로 이미 충분하다.

게다가 앞으로의 세상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터이니 어쩌면 너의 선택은 인문학 시대를 열어가는 희망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옅어지고, 글을 통한 표현의 능력과 가치가 갈수록 낮아지는 세태를 떨쳐 버릴 선택을 네가 앞질러 한 기특함으로 아비는 믿고 있다.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된 세상의 모든 딸들아!

대학의 아카데미와 진리, 그리고 정의와 자유를 말하는 것이 더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스럽기만 한 헬조선의 한 복판에 너희는 이제 발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그런 시간의 흐름이 항상 그대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말 일이다.

시간은 결코 사람의 편에 서지 않으니, 괴롭고 고단한 시간은 항상 길게 느껴지고, 행복한 시간은 찰나에 그칠 뿐이다.

그렇다 해도 길게 느껴지는 괴로운 시간 동안을 용감하게 헬조선을 탈출하는 방법을 깨우칠 수 있는 소중함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푸르른 딸들의 청춘에 있다.

‘불행할 때 인내하고, 행복할 때 긴장하라’는 격언이 새삼스러운 3월이다.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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