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희망 꽃
그 남자의 희망 꽃
  • 배경은<사회복지사>
  • 승인 2016.03.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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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사회복지사>

그러니까 헤어진 지 열 달이 지나고 찬바람이 심장을 도려낼 듯 추운 날, 그가 드디어 아들을 만났다. 지난가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아들의 학교를 찾아갔으나 자신의 모습을 본 아들이 화장실로 도망을 갔다. 그 사건 이후, 충격을 받은 것은 아빠였다. 아들을 전처에게 보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상담하는 시간 동안 눈물을 훔쳐야 했던 그를 보며 내 마음도 참담했다.

이른 사춘기 시절부터 사고란 사고는 모두치고 다녔다. 그러다 아들이 생긴 아빠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일용직 노동자로, 택시운전과 야간 택배 아르바이트로 동분서주하며 아내의 몫까지 키워냈다. 둘이서 오순도순 살 생각밖에 못 하던 그에게 전처가 재혼하고 나타났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설득과 간곡에 못 이겨 평일은 엄마와 보내고 주말은 아빠와 보내며 1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가정으로 상담을 가게 되면 대부분 가족상담까지 이르게 된다. 이 부자가정도 내담자뿐 아니라 아들의 심리상태도 점검해야 한다. 가끔 아들의 목에 손톱자국이 있었다. 엄마의 학대가 의심되어 내담자에게 알리고 아들을 계속 엄마에게 보낼 것인지 의논할 때, ‘아빠, 나 그래도 엄마가 좋아, 모른 척해 줘, 나, 엄마랑 살고 싶어’ 아들의 고백에 내담자도 나도 눈시울을 붉혀야만 했다. 엄마의 부재는 어린 아들에게 크게 자리 잡았고 다시 찾은 엄마를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느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은 엄마를 더 찾았고 새 아빠와도 친해지기 시작하니 전처는 아예 아들을 데려가 버렸다. 자신을 피해 화장실로 도망간 아들이 부담스러워 할까 봐 길 건너에 있는 아들의 학교를 찾아가지 못했다.

가끔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홈페이지에서 얼굴을 확인하거나, 어떤 날은 자신도 모르게 전처가 사는 집 근처에서 무작정 아들을 기다리기도 했다.

상담 시간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모습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 줄 것을 부탁했다.

좋은 직장의 좋은 옷을 입은 아빠의 모습은 아니지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복지사로서 그의 깊은 혼란과 후회, 절망, 그리고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충분히 경청하고 공감했다. 모든 정서의 기관을 열어 그에게 귀 기울였다.

얼마 후, 그가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린 치기로 그만둔 학업에 대한 미련이 있었고 당당한 아빠의 모습이 어떤 것일까 생각했다고 한다.

농협에 근무하는 친형을 찾아가 수학과 영어 기초를 배우고 낮에는 회사 택시를 몰았다. 열심히 살려고 하는 그에게 왜 시련이 없었겠는가. 다시 시작된 불면의 밤, 척추 통증으로 이어진 다리 마비와 두통이 부비트랩처럼 아슬아슬하게 그를 얽어매었다. 때때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날은 일을 쉬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후회의 삶을 만회하고 싶은 욕망으로 치열하게 살아 냈다. 누가 그를 보고 우울증이라고, 정신장애가 있다고 손가락질하겠는가. 자신에게 던져진 생명을 향한 올곧은 사랑이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걷고, 뛰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아들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다시 만난 아들을 품에 안고 기쁨의 웃음을 감추지 못할 아빠 내담자의 얼굴을 생각한다. 책임감의 부성애를 살아야 할 희망 꽃으로 활짝 피운 그의 삶이 대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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