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다
새봄이다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6.03.0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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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창옥

햇살이 제법 따사로운 기운을 머금고 있다.

춥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다가 어느 사이 이젠 봄이 왔나봐를 입에 매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웃는다. 언제나 그렇다. 겨울에는 봄을 지척에 두고도 먼 곳에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 양지쪽에 낮게 웅크려 빛나는 들꽃들을 발견하면 그제야 안심하고 겨울을 밀어낸다.

가게 앞 공원에도 아이들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도 제법 늘었다. 무엇보다 아기엄마들과 아장거리며 걷는 아기들이 많이 보인다. 정말 새봄이 문앞에까지 왔다는 증거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올해는 느낌이 다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 영수 덕분이다. 영수는 사십 넘어 늦깎이 결혼을 한 남동생의 아들이다. 남동생과 나는 두 살 터울이다. 내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것을 생각해보면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에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는 동생이다.

그런 남동생이 어디서 들었는지 조카 가방은 고모가 사줘야 공부를 잘한다면 나를 만나기만 하면 가방 타령을 했다. 그 말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늦은 나이에 학부모란 꼬리표를 다는 남동생이 안쓰럽고 고맙기도 해서 며칠 전 영수를 데리고 가방을 사러 다녀왔다.

조카는 제 맘에 드는 가방을 선택하는데 단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유도 분명했다. 색깔도 맘에 들고 디자인도 맘에 든다고 짐짓 다른 걸 더 골라봤으면 하는 제 어미 마음을 아쉽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순수하다. 그리고 정직하다. 설령 순수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잣대로 아이들을 바라보았을 터였다.

영수도 순수하고 바른 아이로 자라주었다.

가방을 사들고 좋아하는 조카에게 “영수야 너는 고모가 가방을 사주면 공부를 잘한다는 네 아빠 말을 어떻게 생각하니?”했더니 가방을 고를 때처럼 단번에 저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며 “아빠가 어디서 그런 말을 듣고 왔는지 모르겠어요”라며 고개를 저어 나를 웃겼다. 그러면서도 공부는 잘하고 싶다고 한다.

요즘 사회구조가 맞벌이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기 때부터 엄마 품을 떠나 어린이집에 맡기는 게 현실이다.

많이 품어주고 사랑만 듬뿍 받으며 자라야 하는 시기를 다른 손에 맏겨지는 아이들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이들은 분명 “엄마 품에서 놀고 싶어요” 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분명 영수는 복 받은 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제어미가 품에 안고 키웠으니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영수는 제 몸에 사랑이라는 큰 에너지를 축적한 것이다.

어린 시절 많이 안아주고 스킨십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일수록 성격이 밝고 대인관계가 원활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있다.

실제로 호주 시드니대학의 앤서니 그랜트 심리학 교수는 포옹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면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이라고 하는 호로몬을 낮춰 병균으로부터 면역성을 강화한다고 했다.

또 포옹은 혈압을 내려주며 심리적 불안이나 외로움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영수의 순수하고 밝은 성격은 제 어미의 무한한 포옹 덕분인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많이 힘들어할 조카다.

올케가 지금까지 잘해왔듯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에게 “공부는 잘했니?”란 질문보다 “오늘도 즐거웠니? 사랑해 영수야”라며 많이 안아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아! 이젠 정말 새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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