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을 유지해온 물 제천의림지(2)
수평을 유지해온 물 제천의림지(2)
  • 여은희<제천시문화관광해설사>
  • 승인 2016.02.28 17: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여은희

의림지의 특산물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다. 열을 내리게 하고 인체에 쌓인 100여 가지의 독을 해독하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순채는 영조 때 한진호가 지은 『도담정기』에 ‘ 동양에서도 중국의 강동 천리호(千里湖)에 있었고 조선에서는 제천 의림지에서만 있어 궁중에 진상물(進上物)로서의 붕어와 같이 손꼽히던 특산물이었다. ’ 는 기록이 전한다. 두 번째는 ‘붕어’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어변증설 편』에 ‘호서의 제천현 의림지 붕어는 먹으면 비린 맛이 없고 맛도 제일’이라는 기록이 있다. 마지막으로 ‘빙어’는 조선시대 철학자 서유구의 <전어지>에서 ‘얼음이 얼면 잡고 얼음이 녹으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얼음빙(氷)자에서 유래 되었다 하는데 먹으면 오이 맛이나 『과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의림지와 관련된 인물에는 누가 있을까? 의림지 축조설과 연관된 신라시대의 ‘악성 우륵’을 들 수 있는데 연자암에서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자취를 재현한 우륵정(亭)과 우륵정(井)이 복원되어 있다. 조선 세조 3년(1457) 단종복위 운동에 대비하여 체찰사로 파견된 정인지가 호서·영남·관동지방의 병사 1,500명을 동원해서 주둔하였는데 이때 제방을 보수하면서 짚신에 묻은 흙을 털어 생겼다는 ‘신떨이봉’의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진다. 한 말 후기의병장 이강년 장군은 의림지 물에 칼을 씻고 경호정에서 의형제인 김상태, 백남규, 권용일, 하한서 등 제장들과 결사의 항전을 다짐했던 사연이 있다.

원래 의림지는 제방의 주변에 식생하는 나무가 많거나, 제방의 축조에 토축과 더불어 나무를 가설하면서 형성되어 ‘임지’라 불렸는데 고려 992년 군현의 이름을 개칭할 때 나무가 울창하니 샘물이 솟았다는 뜻의 ‘의천’ 혹은 나무가 울창한 곳에 샘물이 발원한 지명의 ‘의원’의 ‘의’ 자를 붙여 의림지라 칭하게 되었다고 고려사에 전한다. 그러나 의림지의 지명이 옳을의(義) 수풀림(林) 못지(池) 인 것을 해석하여 보면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한 말 전기(1895년) 중기(1905년) 후기(1907년)의병의 창의지인 제천에 ‘옳은 사람들이 수풀처럼 끊이지 않았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라고 해석한다면 억지일까.

현재의 의림지 모습은 둘레는 약 1.8km이며, 면적은 약 158,677m², 담수능력은 6,611,891㎥, 수심은 8~13m로 몽리면적은 289.4정보이며 현재까지 농업용수 공급용으로 쓰이며 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혹 자들은 의림지가 규모가 작다거나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들 한다. 그러나 수천 년을 이어오면서 그 기능을 잃지 않고 살아있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의림지는 수리시설의 역할과 더불어 정서적인 기능까지 담당하며 실용적으로 정서적으로 수평을 맞추며 2016년 모습으로 지금 우리들의 삶 속에 들어와 있다. 의림지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은 의림대로 오른쪽의 청전들판을 꼭 둘러보기를 권하고 싶다. 청전들판은 오늘날 의림지가 살아있는 이유를 제공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물은 최고의 상선(上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물인데 그럼에도 물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림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젖어본다. 물은 왜 흐를까? 물은 수평을 맞추고자 흐른다. 법을 집행하는 법(法)자 또한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한번 수평이 맞추어진 물은 다시 흐르지 않는 것처럼 모든 법의 집행이 물처럼 공평하게 수평을 맞추라는 뜻이라고 한다. 의림지를 거울삼아 세상의 물처럼 모든 것에 반드시 필요한 수평이 맞추어졌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