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듬는 일
쓰다듬는 일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6.02.2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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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그녀의 행동에 헛웃음만 나왔다.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병실의 보호자용의자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 그렇게 하고 싶으냐고 말을 걸었다.

“이제 아기가 되었잖아.”

아기가 되었다고 미운 마음이 사그라질까.

그녀의 남편이 뇌혈관질환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에 병문안을 간다고 하자 그녀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란다. 나는 다른 사람을 통해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몸을 쓸 수 없어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고 삼시세끼조차 먹여줘야 한다고 했다. 환자 자신이 받은 충격도 커서 아내에게조차 말문을 닫았다고 한다. 나는 환자의 상태보다 그녀가 겪어야 하는 고단한 삶에 마음이 쓰이고 화가 났다.

병원에 입원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나의 시부께서 그 병원에서 혈관확장시술을 받아야 할 일이 생겼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남편이 있는 병실에 입원하게 되어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남편을 대면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는 많이 양호해졌다. 조금만 거들어주면 식사도 혼자 할 수 있고 화장실 출입도 했다. 말은 어눌해도 표정은 아이처럼 해맑았다. 곁에서 수발을 들어주는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고 등을 토닥거린다. 서로 사랑했고 사랑할 부부처럼 다정해서 그들이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는 나를 기막히게 만들었다.

양가의 부친께서 서로 안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은 묵살된 채 그들은 세 번째 만나는 날 약혼식을 하고 바로 결혼을 했다. 남자는 결혼 초부터 아내를 멀리 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했다. 가정경제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끊임없이 여자문제로 불화를 일으켰다. 그러한 일은 쓰러지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녀가 종교에 의지하며 겉으로는 웃고 살았어도 그 마음속에 날이 선 칼날 없었을까. 쓰러진 남편에 대한 분노를 삭이기 힘들었다고 했다. 간병에 힘든 아내를 외면하는 남편이 말할 수 없이 미워 휠체어에 태워 밀고 다니는 순간에도 험한 생각으로 자제력을 잃을까 봐 겁이 나더란다. 지금 그 남자는 치매환자라는 병명을 또 하나 달고 말 잘 듣는 어린애가 되어 버렸다.

그녀가 다정한 손길로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혼자 먹어보라고 간식을 손에 들려주며 입가를 닦아주고 약을 먹인다. 화장실 가고 싶지 않으냐 묻고, 손을 꼭 잡고 병원복도를 걸으며 운동을 시키는 일은 젊은 날부터 쌓였던 상처와 미움을 허물고 용서했다는 의미다. 무엇이 그녀의 깊은 한을 가라앉혀 흘러가게 하는가. 대답은 간단했다.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미움의 자리를 비우고 그곳에 아기가 된 남편을 받아들여 쓰다듬어 주는 것이란다. 눈을 맞추며 서로 쓰다듬어 주는 일은 지극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일이지 않은가. 관점과 태도에 따라 삶의 질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나 막상 이러한 일이 내게 일어났다면 나도 그녀처럼 끌어안고 쓰다듬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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