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지탱하는 힘
나라를 지탱하는 힘
  • 최준<시인>
  • 승인 2016.02.25 1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최준

북한의 핵 문제가 늘 골칫거리다. 복잡다단한 나라 간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가를 구분하는 노릇 또한 모호하기만 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누구도 자신이 살아갈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난 이는 없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 어떤 언어로 살아가고 있는가는 운명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후회한다고 해서 섣불리 배를 갈아탈 수도 없다. 아무리 잘 사는 나라라고 해도 구성원 전부가 행복할 수도 없다. 불평등과 불공정은 사라질 수 없고 그걸로 유지해 나가는 게 국가다.

큰아들 아이의 훈련소 퇴소식에 다녀왔다. 대한민국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군대는 일생의 통과제의나 다름이 없다. 한겨울에 입대해서 훈련받느라 고생했을 아이의 얼굴은 밝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훈련소로 불어가는 바람이 찬데 음식점을 찾아들어 점심을 먹었다. 군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아이를 바라보니 생각이 많았다. 태어나 아장걸음을 걷던 아이의 모습이 엊그제만 같은데 나보다 더 건장한 청년 하나가 앞에 있었다. 아이의 모습과 삼십 년 저쪽의 내가 자꾸만 오버랩 되었다.

연초에 입대해 소양댐 선착장에서 군용선에 올라 생면부지의 동료와 함께 줄지어 앉아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가요를 들었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의 엔진음만 정적을 깨뜨리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그때의 막막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순간순간을 단지 견뎌내면서 물리적인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었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두 개의 겨울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게 흘러가고 다시 사회로 환원되었을 때 세상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듯했다. 나 하나 어느 날 갑자기 지상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흔적이 남을 리도 없었다.

어찌 살아왔는지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헐떡이며 달려온 사이에 한 세대가 지나고 군인 아들을 둔 중년이 되었다. 대통령이 몇 번이나 바뀌고 살이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나 본질은 그리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그때의 이런저런 사회 문제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들로 남아 있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세상은 외려 더 메마르고 빡빡해졌다. 일자리 얻기가 힘들어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군대를 도피처로 생각하는 청년들이 산재해 있다. 정치한다는 이들은 미래의 행복 운운하는 말들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지만 우리 사회의 앞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건 국민의 당연한 의무다. 제 집안 걱정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따른다. 나라가 국민인 나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는가 하는 긍정성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국민은 과연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까. 부대로 돌아가는 아이의 등 뒤에 대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자식의 군대도 빼 줄 힘이 없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아비를 둔 불쌍한 아이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왠지 모를 미안함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고위공직자들의 군대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문회 자리에서는 늘 이 문제가 말썽이다. 왜 그들의 자녀는 군대에 가지 않은 이들이 유난히 많을까. 누구보다도 잘 먹고 잘 자랐을 그들은 왜 그렇게 많이 아픈 걸까. 사회에 팽배해 있는 위화감과 괴리감은 과연 누가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으로 이를 증명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 나라를 지탱해 나가는 건 묵묵히 자신의 삶을 견뎌내는 무명의 대다수 대중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깃발 아래 모여들어 허망한 구호를 외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는 이들을 위무해 줄 따스한 손길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서 슬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