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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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승인 2016.02.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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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김주희

새 학년을 준비하는 2월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과 가깝게 지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쌓여 여러 가지 자료를 뒤적여본다. 학교도서관 장서점검을 하던 중 내 눈에 포착된 책 ‘소설처럼’(다니엘 페나크 저)은 겨울방학 독서교육 연수 자료에 많이 인용되어 제목이 익숙한 책이었다. 책을 훑어보니 ‘책을 읽지 않을 권리’를 비롯한 이른바 ‘독서 십계명’이 실려 있다.

저자 다니엘 페나크는 20여년 동안 프랑스 중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한 작가이다. ‘소설처럼’은 책을 읽는 즐거움에서 멀어진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다. 어른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쏙 빠져 밤마다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던 아이들이 정작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왜 책에서 멀어지는지 그 이유를 파헤치고, 이런 아이들을 다시 책의 세계로 돌아오기까지 부모와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간결하면서도 정갈하게 풀어낸다.

책읽기를 좋아하던 아이들이 언제부터 책을 멀리하게 되었을까? 다니엘 페나크는 먼저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만년에 톨킨(반지의 제왕의 저자)이 손자들에게 그랬듯이, 우리는 아이에게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주었다. 낮과 밤이 맞물리는 이슥한 시간에, 아이 앞에서 우리는 소설가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아이에게 읽어준 이야기에는 언제나 형제, 자매, 부모, 이상적인 주인공, 수호천사가 가득했다. 그들은 아이의 슬픔을 떠맡아준 든든한 친구들이었다.’

상상의 나래를 열어주고 즐거움과 든든함을 동시에 안겨준 이 소중한 친구를 아이들은 왜 멀리하기 시작했을까?

저자는 우리의 궁색한 변명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그 옛날 아이의 머리맡에서 ‘빨간 모자’ 이야기를 해주면서 소녀가 입은 빨간 망토부터 소녀의 바구니에 무엇이 담겼는지, 숲은 얼마나 깊었으며 할머니의 귀는 또 얼마나 망측한 털투성이가 되었는지, 쐐기며 빗장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시시콜콜 일러주었어도, 아이가 그 긴 묘사들을 지루해했던 기억은 한 번도 없었다.’ -중략-

지금은 아이 혼자서 원수 같은 책과 씨름을 해야 한다. 우리는 기꺼이 아이에게 천상으로의 여행에 안내자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지금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엄청난 노력에 지레 압도당한 상태다.

모든 사람은 이야기에 대한 갈구가 있다. 책은 이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다. 책에서 멀어진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이끄는 방법으로 저자가 시종일관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본능을 전제로 한다. 저자는 아이들이 혼자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시기에도 여전히 책을 소리내어 읽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말이다. 학업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학생들이 모인 고등학교에서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어주면서 경험한 실증적인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소설을 있는 그대로 크게 읽어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다.

새 학년 독서교육을 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중심을 찾은 듯하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다고 불안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아예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독서교육의 출발점이다. 읽어도 모를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그 두려움으로 인해 책을 저 멀리 귀양 보낸 사춘기 아이들에게 소설은 ‘소설처럼’ 읽혀야 한다는 사실을 살짝 알려줘야겠다. 그리고 교사가 원하는 텍스트 요약이나 감상문 적기를 순발력 있게 해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겁을 먹게 하고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모든 아이들이 누려야 할 책이 주는 충만한 기쁨을 빼앗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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