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예찬
들꽃예찬
  • 이은희<수필가>
  • 승인 2016.02.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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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이은희

봄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에 봄꽃을 찾아 산에 오른다면 꽃을 보지 못하리라. 봄의 여신은 자신의 발치에서 손짓하고 있다. 작은 들꽃들은 이제나저제나 사람의 눈길을 기다린다. 하지만 인간은 어디 그러한가. 파랑새를 찾아 집을 떠나듯 봄꽃을 보러 남쪽으로 향한다. 봄은 지척에서 소리 없이 후미진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내가 봄을 느낀 순간은 논둑길 잔설 아래 검붉은 냉이가 불쑥 오른 모습을 보았을 때다. 언 땅에서 캔 냉이는 뿌리가 굵고 길며 향기가 짙다.

그러나 봄이 무르익고 냉이 꽃이 필 즈음의 냉이는 뿌리가 잔털이 많고 얇으며 향기가 거의 없다. 같은 냉이인데도 날씨 탓으로 돌리기엔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냉이도 계절 앞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봄이 오면 신고식처럼 된장을 푼 냉잇국을 끓인다. 국을 끓이는 내내 그 향기에 취한다. 무엇보다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과 입맛을 달래 줄 음식으로 삼삼한 냉잇국만큼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냉이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봄의 시작을 알렸고, 우리의 건강과 식탁을 단연코 차지하고 있었다.

봄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냉이는 가느다란 줄기 끝에 앙증맞은 하얀 꽃을 매달고 아지랑이처럼 흔들거린다.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흰 냉이 꽃은 노란 꽃다지와 소소한 꽃밭을 이룬다. 키가 크다고 허공만 보고 다닌다면 보지 못할 꽃들이다. 가녀린 꽃들은 매번 내 마음을 마구 뒤흔들어 놓다 못해 자꾸 밖으로 이끈다.

또한, 목에 힘주고 허리가 꼿꼿한 사람은 개불알풀 꽃을 보지 못한다. 예를 갖추고 녀석을 알현해야만 한다.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바라봐야만 볼 수 있는 앙증맞은 꽃이다.

꽃이 피지 않으면 들풀처럼 여겨지고, 스쳐 가면 너무 작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녀석의 생명력과 종족 번식력은 대단하다. 조그마한 틈새에 흙과 햇볕이 있으면 보금자리를 만든다. 후미진 개나리 울타리와 담장 아래나 드넓은 잔디밭을 순식간에 점령한다.

청보라 빛 보석을 뿌린 듯 깨알같이 반짝이며 그의 본색을 드러낸다. 명자나무와 목련 꽃이 피지 않은 때이다. 그 꽃을 자세히 바라보니 참 맹랑한 녀석 같다. 달팽이 더듬이처럼 생긴 것이 수술인 거 같은데, 마치 두 눈을 껌벅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 성싶다. 작은 들꽃이지만, 있을 거 다 있는 꽃이다. 나도 모르게 청보라 빛 매력에 빠져든다. 녀석을 어루만져보고 싶지만, 그 모습이 손톱보다 작고 여려 꽃잎이 으스러질까 마음뿐이다.

연이틀 봄볕이 따사롭다. 머지않아 들꽃이 앞다퉈 피어나리라. 작은 들꽃을 좋아하다 보니 걸을 때도 으레 땅을 보고 걷게 된다. 반갑게도 공원 양지바른 곳에 개불알풀 꽃이 피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빛을 발하며 영토를 늘리고 개체 수를 늘려 가리라.

어서 길고 긴 겨울을 이겨낸 황새냉이에 ‘너희 참 예쁘다.’고, 돌 틈에 핀 민들레에 ‘너 참 기특하다.’고 말을 걸어볼 그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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