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41호처럼 마음 가꾸기
국보41호처럼 마음 가꾸기
  • 박숙희<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6.02.2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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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 박숙희

3조 승찬(僧璨) 대사가 2조 혜가(慧可) 대사에게 묻기를 “제자가 몸에 풍양을 만났으니 청컨대 스님께서는 저를 위하여 죄를 참회해 주소서.”2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죄를 참회해서 마쳤으니 마땅히 불법 승에 의지하여 머물 것이니라.”이르기를 “제가 지금 和尙을 봄에 이미 이 스님인 줄을 알았습니다만 어떤 것을 불법이라고 이름 하나이까?”2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마음이 바로 이 부처요, 이 마음이 바로 이 법이라. 부처님과 법이 둘이 없고 승보도 또한 그러하리라.”말하기를 “오늘날에 비로소 罪性이 내, 외, 중간에 있지를 않고 그 마음과 같이 그러해서 부처님과 법이 둘이 없나이다.”2조께서 그가 법기임을 깊이 인증하셨다.

3조 승찬 대사가 자신이 과거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풍병이란 병을 얻게 되었는지 혜가 대사에게 죄를 벗겨 달라고 간청한 것이겠다.

달마 대사께서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에게 안심을 해주겠노라”고 했던 식으로 혜가 대사도 승찬 대사에게 그 죄를 가지고 오면 죄를 참회해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부전자전으로 같은 방법으로 설법하셨다는 것. 그러니까 혜가 대사가 달마께 “마음을 찾아봐도 마침내 찾아볼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것처럼 승찬 대사께서도 “죄를 찾아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였단다. 이것은 3조께서 스님이 되기 전에 혜가 대사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이란다.

佛 法 僧, 즉 三寶가 세 가지인 것 같지만 세 가지가 둘이 없고 바로 그 마음자리라는 것이란다.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一心同體, 同體三寶를 말한다는 것.

이는 둘이 없다는 것은 동체삼보, 自性三寶를 말한 것. 즉 마음에 覺照(각조)라는, 깨달음을 비추는 것이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불보라는 것이겠다. 불을 번역하면 바로 覺이라는 것. 하나의 동일한 軌持(궤지), 즉 어떤 일의 경로를 유지하는 것은 법보가 되고 화합은 승보이라는 것이겠다. 마음이 여러 가지로 갈등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마음속의 순수하고 청정하고 오묘한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 화합리라는 것 아니겠는지.

승찬 대사가 혜가 대사께서 한 그 말씀을 듣고 죄의 체성이 마음 안에 있지를 않고 마음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마음과 같이 그러해서 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불과 법도 둘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아닐는지.

절차탁마(切琢磨)라는 말이 있다. 이는 원래 나무나 돌 등을 갈고 다듬어서 멋지게 만든 조각처럼 잘생긴 사람을 묘사하는 표현이었다고 한다.

청주에는 국보 제41호가 절차탁마 인양 성안길에 트랜드 마크처럼 오랜 세월 한결같이 우뚝 서 있다. 담배꽁초 등 온갖 쓰레기를 이 국보 주변에 버려도 천 년이 넘도록 대지의 배려심 깊은 것, 닮음처럼 늘 그 자리에서 우리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지 않는가. 잘생긴 인물 조각상을 만들려면 공을 들여서 나무나 돌 등을 갈고 자르고 쪼아야 하듯. 이 국보 제41호를 함께 깨끗이 보존하여 가난하거나 지위가 낮으면서도 인생을 즐겁게 살 줄 알고, 부자이거나 지위가 높으면서도 예의를 지키면서 깍듯하게 행동하는 것. 이것이 국보 제41호처럼 마음 가꾸기 하는 높은 경지를 실천하는 것 아닐는지. 승찬 대사가 “죄를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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