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 (3)
귀소본능 (3)
  • 반영호<시인>
  • 승인 2016.02.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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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 앞에서
▲ 반영호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설 연휴 기간에 도로·철도·항공·해운 등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 총 3천 700만명이 이동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이니 75%가 이동을 한 셈이군요. 고속도로는 차량 2천400만대가 이용해 하루 평균 교통량 400만대로 작년 설 연휴 대비 3.6% 증가했습니다.

추석과 함께 설은 가히 우리 민족의 대명절다워요.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지만 저도 고향에 갔습니다. 부모님이 계실 때에 비하면 다소 참석률이 떨어지긴 해도 형제들과 조카들이 모였습니다. 명절엔 차례도 차례지만 흩어져 사는 식구들 만나는 것이지요. 가끔 전화로 안부는 주고받지만 직접 만나 얼굴보고 나누느니만 한가요. 명절에 고향 가는 이유가 어디 이뿐일까요. 일가친척은 물론이거니와 마을 사람들과 외처로 나가 사는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귀성차량의 미어터지는 교통체증을 감수하면서도 쾌히 고향을 찾는 저 순수한 마음들….어릴 적 설날은 그야말로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설빔으로 양말 장갑 때때옷을 입었죠. 설빔. 선조들은 새해가 되면 새 옷을 입었습니다. 그 옷을 마련하기 위해 아녀자들은 그믐달 긴긴 밤 동안 옷감을 짜고 바느질을 했죠.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 옷으로 단장하고 차례를 지내면서 묵은 것은 떨어내고 새해의 길운을 염원했습니다. 그 전통이 이어져서 요즘에도 꼭 새 옷이 아니더라도 한복이나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친지들에게 세배를 드리죠. 새해를 맞아 새로 장만하여 입는 옷을 설빔이라고 하는데요. 설과 빔의 합성어입니다. 설과 빔의 합성어인 빔은 ‘빌리다’라는 얘기? 빔은 ‘꾸미다’라는 의미의 고어인 빗다에서 온 말인데요. 빗다의 명사형인 ‘비’가 빔으로 바뀐 겁니다. 그러니까 설빔은 설에 꾸며 입다. 그런 뜻입니다.

설빔, 추석빔, 단오빔처럼 특별한 날 잘 차려입는 것을 뜻했는데요. 그것이 특별한 날 새로 장만한 옷이라는 의미로 굳어진 거죠. 설을 맞이해 새로 장만하여 입거나 신는 옷, 신발 따위를 일컫는 말로 설과 ‘꾸미다’는 뜻의 빔이 합쳐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빔을 입고 차례를 지내고 나면 집집마다 돌며 어른께 세배를 올려 세뱃돈을 챙기고 연 날리기, 널뛰기, 윷놀이, 제기차기를 하였지요. 어른이 되면서 이집저집 돌며 술을 얻어 마시는데 어느 집은 막걸리, 어느 집은 청주, 또 어느 집에선 소주 등 다양했으니 그야말로 완전 짬뽕이 되어 취하는 거예요.

올 설 계획을 화려하게 짰었지만 대다수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차가 너무 막힌다는 교통소식에 먼 길은 엄두를 못 냈기도 하고요, 오래된 친구들이 몇 내려와서 우리 집에서 묵었거든요. 고스톱을 치면서 양주 소주 위스키 담근술까지 집에 있던 술이란 술은 독을 냈습니다. 모두 퇴직들을 했고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겠다는 거예요. 친환경 유기농으로 자급자족할 자그만 텃밭이 있는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겁니다.

연휴 기간엔 또 4년 만에 만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꾼들입니다. 선거꾼들. 그러고 보니 국회의원선거가 임박했습니다. 선거때만 되면 어디 있다 나타나는지 꾼들이 모여듭니다. 금 뺏지를 단 사람도 있고 낙방하고 4년간 칼을 벼르다 나타난 사람도 있습니다. 후보자뿐만이 아니죠. 추종하는 패거리들까지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오랜만이니 반갑게 맞아주어야겠지만 그러기엔 속이 훤히 보이는 뻔뻔한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철새 중의 철새가 아니겠어요.

이제 긴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잠시 나태해 졌던 마음을 추스르고 본연에 임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친구들과 약속했던 전원주택 부지를 알아봐야겠습니다. 돌아올 친구들과 함께 옛정을 나누면서 멋진 노년을 꿈꿔 보렵니다. 내년에도 설은 또 돌아올 겁니다. 고향 떠나 오대양을 누비던 연어가 고향을 돌아와도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오는 연어처럼, 청운의 꿈을 안고 떠났던 그 친구들도 꼭 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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