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의 서른살 노인
청동기 시대의 서른살 노인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6.02.1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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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딸아,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고개 숙인 너를 보았다. 친구들이 상장받으러 단상에 올라가고 학교장이 따분한 말투로 공덕을 치하하는 동안 관심 없는 듯 너는 휴대폰만 쳐다보더라. 너와 단상 사이에 벽이 있는 것 같았어. 휴대폰 액정이 네 안경에 파랗게 비치더구나. 위축되고 낙담하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아빠에게 3년 개근상밖에 내밀 게 없어서 너는 미안했구나.

미안해하지 마라. 넌 잘못한 게 없다. 아빠는 너를 학원에 보내지 않았고 남들처럼 과외도 붙여주지 않았어. 그럴 여유도 없었거니와 학교 성적에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너를 학교에 보내는 거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지만 이 길이 전부가 아니라 생각했기에 다그치지 않았지. 그저 몸 건강하고 남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면 족하다 싶었다. 학교가 주는 상장은 그리 큰 의미가 아니니 기죽지 마라. 너에겐 엉뚱하다 싶을 정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있잖아. 그건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큰 재능이야.

시간이 지나면 너도 사회인으로 홀로서기 해야겠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청년 열 명 중 네 명만 취업했는데 이들 중 절반이 비정규직이야.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임금은 최저 수준으로 낮아. 그마저도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일할 수 없는 불안한 고용형태지. 대학을 나와도 절반 이상이 취업을 못하고 취업을 해도 상당수는 비정규직의 저임금 노동자야. 불행히도 비정규직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

그들은 경쟁에서 밀려난 실패자가 아니다. 공교육이라는 달리기에서 누구는 스파이크를 신고 뛰고 누구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어야 하는 게 교육 현실이야.

학교 교육은 애초부터 공정한 출발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너도 그리 좋은 출발은 아니었어. 이 상황은 네가 고등학생이 되어도 크게 바뀌지 않을 거야. 전문가들은 지금의 교육 불평등이 부의 불평등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니 딸아, 경쟁에서 뒤졌다고 낙담하지 말고 이겼다고 우쭐대지 마라.

며칠 전 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성공 요인 1순위로 부모의 경제력을 꼽았대. 학벌은 네 번째로 밀려났어. 성적이나 인성, 사회성이 뛰어난 것보다 부모가 돈이 많으면 성공에 유리하다는 뜻이지. 이젠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아. 그래서 미안해. 아빠는 월급 외에 부동산이나 주식투자, 아파트 시세 차익같이 돈 버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야.

신문을 보니 청년의 꿈과 희망이 꽁꽁 얼어버린 지금을 ‘청동기 시대’라 하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무기력한 청년들을 ‘서른 살 노인’이라 부른대. 현실에 순응하며 살았을 뿐인데 어느 순간 청동기 시대의 서른 살 노인이 된 거야. 태어나 보니 아빠가 흙 수저였고 공정하지 않은 경쟁에 내몰렸을 뿐 청년들의 잘못은 없어. 그런데도 세상은 청년들을 돌아보지 않더구나.

아빠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경쟁이 아니기에 뒤처지더라도 네 잘못이 아니야. 내 딸이 청동기 시대의 서른 살 노인이 되더라도 결코 타박하거나 낙담하지 않아.

자본 경쟁에 치어 오그라들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조용히 옆에서 응원할게. 그러니 너도 세상의 벽에 절망하지 말고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라. 학교가 주는 어떤 상보다 인생 개근상이 더 값진 것이다. 이제 파스타 먹으러 가자. 졸업을 축하하며 아빠가 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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