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잠식하는 불안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2.0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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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움말 김시경 교수 <충북대병원 정신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아랍 속담이 있다. 일상의 불안도 쌓이면 고귀한 영혼까지 파먹는다는 말이다. 사람들 앞에 서는 아주 작은 일에서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시험과 승진, 성적 등 불안해서 잠 못 이루는 현대인들은 각자 보이지 않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현대를 '불안의 시대'(The Age of Anxiety)라고 일컫는지도 모른다.

◈ 불안의 정의 및 증상

불안(不安)이란 뚜렷한 원인 없이 생기는 불쾌하고 모호한 두려움과 이와 더불어 각종 자율신경계통의 과민증상들이 동반되는 기분 상태를 말한다.

올 해 대한불안의학회에서 시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25% 정도가 불안한 상태에 있고, 6%가 평소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불안을 느낀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불안 해소법으로 대부분 참거나 술을 마시는 등 건강하지 못한 방법을 활용하며 적극적인 치료를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도구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고 천하태평인 상태로 있다면 시험에 떨어지거나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상적이고 적당한 불안과 긴장을 통해 우리는 건강한 개인으로서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정상적인 불안의 수준을 넘어 개인의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을 위협하는 상태로 이를 '불안장애'라고 한다. 1871년 미국의 DaCosta가 남·북전쟁에 참전한 병사들 중에 실제로 심장질환이 없으면서도 가슴의 통증과 다양한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발견해 과민성심장 (irritable heart)이라고 공식 보고한 이후 불안장애가 알려지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병사의 심장 (soldier's heart), 전투 피로증과 같은 용어로 부르게 되었는데 실제 전투에 참전한 병사보다는 참전 직전이나 혹은 전투지역에서 장기 후송되어 군병원에 입원하는 경우에 막연한 불안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특징을 보인다.

고소 공포증이나 폐쇄공포증과 같은 말에서 보듯 공포가 두려움의 대상이 분명한 경우에 한정하는 용어라면 불안은 그 두려움의 대상이 확실하지 않고 모호한 경우이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지 않지만, 자신을 위협하고 압박하는 이유를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 즉, 명확한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을 뿐이지 곰곰이 따져보면 불안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 불안한 시대에서 살아남기

최근 우리 사회는 불안감이 가중되는 시대에 살고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납치, 유괴의 위험으로 밤길을 걱정하고,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각종 화학물질과 트랜스 지방덩어리라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은 중금속 덩어리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핵전쟁에 대한 걱정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이러한 것들의 위협이 검증되지 않았으며, 쓸데없는 기우일 것이라는 위로를 받아도 일시적으로 안심하겠지만, 그래도 남는 찜찜함은 해소하지 못하고 잠재적인 불안의 가능성을 높인다.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불안을 겪는 경우에는 스스로 극복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역량이 성장하며 이를 통해 더 큰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개인의 역량 이상의 불안을 겪는 경우 도망치거나 포기하게 되고, 심각한 좌절감이나 건강에 손상을 겪게 될 수 있다. 세상에는 극복하지 못할 만한 불안이란 없다. 물론, 혼자 이겨내기 힘든 불안은 있을 것이다. 현재 불안 상태를 내가 극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 자신의 역량이나 의지가 부족한 탓이라고 보기에는 우리를 압박하는 불안 유발 수준은 충분하다. 만일 불안감을 경험하고 있고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면 내 주변 가족이나 친구, 선배나 선생님, 종교 지도자나 정신과 전문의와 상의하는 것이 자신의 성장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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