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해요 아버지
죄송해요 아버지
  • 김기원<편집위원·청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6.02.17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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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눈발이 흩날리는 밤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던 날 밤에도 하얀 눈이 밤새도록 내리더니 34번째 기일인 오늘밤에도 하얀 눈이 저리 내립니다.

드럼통에 연탄불을 가득 피워놓고 차가운 눈을 맞으며 밤샘을 하던 고마운 친구들,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온채로 향을 꽂고 절을 하던 조문객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버님!

당신을 그렇게 보낸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때의 처연함이 제 가슴속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는데 어느새 34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네요.

당신께 올린 오늘밤 제사가 장남인 저의 집에서 올리는 마지막 제사였습니다.

죄스러운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어 늦은 밤 우편번호도 없는 하늘나라로 이 편지를 올립니다.

아버님과 동갑인 송해 선생은 지금도 현역에서 창창하게 뛰고 있는데, 자식들 효도한번 받지 못하고 그렇게 빨리 세상을 등진 아버님이 야속하고 서러워 60이 넘은 이 나이에도 때론 남모르는 속울음을 웁니다.

그런 아버님께 차마 입에 떨어지지는 않는 죄송스러운 말씀을 올립니다.

아버님 기일이 정월 초아흐렛날이라 귀성전쟁을 치루며 설 차례를 모시려 왔다가 일주일 후에 다시 와야 하는 부담이 그동안 동생들과 손자들에게 적잖이 있었습니다.

서울 인천 수원 성남 원주 등지에서 직장살이를 하는 동생들과 손주들이 주말도 아닌 평일에 제사 모시려 내려온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득이하게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면 온종일 불효한 마음과 큰형에게 빚진 마음으로 사는 동생들과 아들 조카들의 심정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하여 형제들과 논의 끝에 용단을 내렸습니다.

내년부터는 어머님 기일인 섣달 초나흗날에 아버님을 함께 모시기로 말입니다.

부디 불초의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고 어머님 기일에 어머님 손 꼭 잡고 오시기 바라옵니다.

대신 아버님 기일 낮에는 제가 아버님 유택을 찾아뵙고 아버님이 좋아하시던 술 그득 부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며느리와 함께 성당에서 위령미사를 정성껏 올리겠습니다.

설 차례와 추석 차례도 여태껏 해왔던 것처럼 정성껏 모실 터이니 너무 서운타 마시옵소서.

이런 불초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리라 믿사오니, 찢어지게 가난한 7남매 장남한테 시집와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34년 동안 단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제사상과 차례 상을 정성껏 차려온 어진 맏며느리를 가상히 여겨주시기 바라나이다.

아버님이 운명하시던 날 아침에 태어난 장손은 금년 9월이면 두 아이의 아빠가 될 거구요, 둘째 손자 녀석도 직장생활 잘하고 있어 결혼만하면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아버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7남매가 직장관계로 흩어져 살지만 모두들 선한 아버지를 닮아 아들딸 건사하며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저와 둘째와 첫째 사위는 직장에서 은퇴를 했고, 며느리 사위에 손주까지 본 초로가 되었습니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아버님 덕분에 자손들이 국가유공자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작년 7월 16일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가보훈처장의 관인이 찍힌 국가유공자증서를 받았습니다.

아버님의 국가유공자증서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한 것이므로 이를 애국정신의 귀감으로서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 이 증서를 드립니다.’라고 말입니다.

비록 아버님의 공적을 뒤늦게 찾아낸 몽매한 자식들이지만, 그런 아버님의 헌신이 자양분이 되어 저와 제 아내와 두원이와 첫째 사위는 행정공무원이 되었고, 교원이는 경찰공무원이, 명원이와 명원이 처는 교육공무원이 되어 국가와 지역사회에 이바지 하고 있습니다.

창가 여명이 새벽임을 알립니다.

아버님! 죄송한 맘 내리사랑으로 갚겠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편집위원ㆍ청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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