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부탁해요 엄마와 세상의 말없음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와 세상의 말없음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6.02.16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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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TV드라마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제각기 나름의 일정한 틀이 있다.

그 가운데 주말과 일일드라마의 경우 대개는 해피엔딩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착하기 그지없는 주인공이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행복을 차지하게 된다는 점이 인기의 비결이다.

KBS 2TV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가 막을 내렸다. 주말 저녁 혼자 TV를 독차지하게 된 쓸쓸한 중년의 나는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며 청승맞게도 꽤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안타깝기도, 심지어 야속해하기도 한 결말은 새드엔딩. 기적을 바라던 내 무리한 기대에 아랑곳없이 주인공 임산옥(고두심 분)이 결국 가족을 비롯한 이승의 모든 것과 영원히 결별하고 말았다.

배우 유동근이 아내 없이 홀로 자식 삼 남매를 돌보다가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애절한 기록, <가족끼리 왜 이래>이후 또 한 번 가슴 저리게 하는 주말드라마가 있음이 새삼 서럽다.

‘그리고 1년 후 그들은 (주인공이 없음에도)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쯤으로 그려지는 <부탁해요 엄마>와 <가족끼리 왜 이래>는 가족의 해체를 우려하는 현실과 너무 닮았다. 자식이 최우선이며, 헌신이라는 이름 외에는 다른 어느 것도 있을 수 없는 엄마와 아빠는, 그러나 끝내 행복한 모습으로 함께 존재하지 못한다. 가족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설정으로 나타나 흐뭇하고 대견스럽게 지켜보는 모습은 그래서 더 아프다.

존재의 가치는 세상을 등지거나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상태, 즉 유형과 무형의 차이와는 별 상관이 없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나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가족을 포함해 아무도 없다. 그런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말은 더 그렇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자꾸만 핀잔이 먼저 나오고, 뜻하지 않게 툴툴거리며, 남들보다 못한 가족, 그리고 부모 자식과의 관계로 지내는 일이 그 얼마나 많은가.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의 큰아들처럼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화부터 먼저 내고 보는 아들이 엄마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실어증에 걸릴 만큼 충격적인 연출은 드라마에만 있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많이 가족들과의 말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까닭 없이, 그리고 속절없이 내뱉는 모진 말들에도 드라마처럼 독백으로라도 내 참뜻은 그게 아니라고 제대로의 의미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장치는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는 없다.

말해야 한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또 고마우면 고맙다고. 미우면 밉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고 표현을 해야 세상이 알 수 있다.

분노해야 할 것은 분노해야 하며,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고칠 수 있고 바로 잡을 수 있다.

人之於言猶水火 (인지어언유수화: 사람에게 있어서 말은 물이나 불과 같다)

人非水火不生 (인비수화불생: 사람은 물과 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而罹其禍則甚酷 (이리기화즉심혹: 수재나 화재를 당하면 참혹하기 그지 없으니)

愼其害則無弊 (신기해즉무폐: 조심해서 사용해야 폐해가 없다)

- 윤기.(1741~1826) 무명자집(無名子集)에서

말하라. 말 없음 보다 세상을 참되게 할지니. 다만 신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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