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로또
소나무와 로또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6.02.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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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모임에서 로또복권 한 장을 받았다. 당첨이 된 것도 아닌데 기분이 묘하게 설렌다. 받는 순간부터 추첨 일까지 일주일이 길게만 느껴지는 날이지만 당첨이 된다면 현금으로 돈다발이 얼마나 많을까 계산을 해 보기도 했다. 그야말로 007가방으로 몇 개나 될까?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 손끝에 늘 달고 다니는 돈, 누구나 다 좋아하고 사모하는 돈, 뱃속에 아이도 돈을 준다고 하면 얼른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그날 밤, 괜스레 당첨이라도 된 것처럼 상금을 어떻게 어디에 쓸까를, 상상을 하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하고 금방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흐뭇하기도 했다. 복권 당첨되는 꿈은 온 동네가 불타거나, 대통령과 악수하는 꿈, 수 십 마리의 돼지가 자신을 가로막는 꿈, 조상님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이 돈을 주는 꿈 등이라고 한다. 잠자리 들기 전 매일 밤 대박 꿈꾸기를 기원하며 눈앞에 돈방석이 스쳐간다.



돈, 돈(지폐)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그렇게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우리 돈에 대해 무관심하기도 하다. 오만 원 지폐에 신사임당과 묵포도도, 만원 지폐에는 세종대왕과 일월오봉도가 배경으로 되어 있고 오천 원 지폐는 율곡 이이 오죽헌과 대나무 그리고 천원 지폐는 퇴계 이황과 도산서원이 그려져 있다.



만 원권에 그려져 있는 일월오봉도(병풍)에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물이 일정한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만 원권에 일월오봉도의 소나무는 장수와 건강을 의미하지만, 그 옛날 궁중 연회 때 병풍은 백성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제작되어 조선시대 어좌의 뒷 편에 놓였다 한다. 소나무는 십장생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소나무가 주는 우리의 일상과 삶, 알게 모르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소나무의 새순이 돋아나면 엑기스를 담아 만든 솔잎차는 불가에서 즐겨 마시고, 온통 노랗게 분칠 된 세간과 집안 봄이면 송홧가루가 세상을 점령하여 귀찮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솔잎은 송편을 찔 때와 약재로도 쓰이기도 한다. 뿐인가 예전에는 송화다식을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으니 참으로 유용하여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소나무이다.



그날 저녁메뉴 오리 훈제. 우연의 일치일까. 훈제 아래 양파슬라이스와 솔잎을 깔아 놓은 오리 훈제가 나왔다. 정말 삶의 깊숙이 자리 잡은 소나무는 식생활은 물론 관상용 분재로도 으뜸이다. 햇빛을 쫓아가며 양분을 흡수하려고 악조건에서 구부정하게 자란 소나무, 굵은 밑동에 허리가 휘어진 것처럼 툭 휘어진 소나무는 동양화에 많이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추운 겨울 숲에 눈보라와 같은 역경 속에서도 언제나 푸른 모습을 지닌 소나무의 기상은 꿋꿋한 절개와 흔들림 없는 우리 민족과 함께한 의지의 상징이었다. 동양화를 그리는 지인은 항상 화폭에 소나무가 등장한다고 한다. 소나무기둥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안갯속에 희끗희끗 매력을 발산하는 소나무가 있는 풍경, 지인은 소나무에 매료되어 일월오봉도를 그렸다고 하니, 조선시대 어좌의 뒷 편에 놓여 있던 병풍 꿈이라도 꾼다면 대박일 텐데.



간밤에 꿈도 개꿈인가보다. 아무 기억도 없는 걸 보니, 하나 인생역전이라는 로또복권 한 장이 주는 기쁨은 활력소다. 설령 당첨이 되지 않아도 우린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쓴웃음 한번 짖고 미련을 버린다. 이렇게 별거 아닌 것에 우리 소시민들은 재미를 느끼고 행복해 하니 로또의 또 다른 매력인 거다.



로또는 꽝이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일주일 동안 희망과 꿈을 향한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면서 그동안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을 생각하게 하고 또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니까. 이만하면 내가 로또 당첨자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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